독일 조종사 10명 중 9명 이상이 비행 중 ‘쪽잠’을 잔 적이 있다고 답한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0일(현지시간) 독일 조종사 노조(Vereinigung Cockpit)가 최근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해, 노조 소속 조종사 900여명 중 93%가 비행 중 쪽잠 경험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쪽잠 경험이 있는 조종사 가운데 12%는 비행할 때마다 쪽잠을 잔다고 답했으며 44%는 정기적으로, 33%는 가끔 쪽잠을 잔다고 했다. 카타리나 디젤도르프 독일 조종사 노조 부회장은 “조종실 승무원들이 만성적인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조종사들이 쪽잠을 잘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로는 무리한 운항 스케줄과 경제적인 압박을 꼽을 수 있다. 유럽 조종사 노조인 유럽조종사협회(ECA)는 지난 7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수년간 이어진 비용 절감 경쟁과 코로나19 이후 심화된 인력난이 조종사들을 한계 상황으로 내몰았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특히 신체 리듬을 파괴하는 야간 비행, 휴식 없이 다음 비행에 나서는 연속 근무가 피로를 가중 시키는 원인으로 꼽혔다.
조직문화도 문제로 지적됐다. ECA가 2023년 유럽 조종사 6900여명을 대상으로 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상당수 조종사는 피로를 이유로 비행을 거부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설문조사에 참여한 조종사 12%만이 소속 항공사에 피로 보고 시스템을 신뢰한다고 답했다.
이러한 문제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조종사들 역시 월 100시간을 넘나드는 장시간 비행과 ‘퀵턴’ 관행 등으로 피로도가 높은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피로위험관리시스템(FRMS)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현재 업계는 ‘시간 제한 방식’으로 조종사들을 관리한다. 28일간 100시간 이내, 연간 1000시간 이내로 비행 시간을 법적으로 제한한 것이다. 다만 시간으로만 피로도를 따지다 보니 피로도가 극심한 근무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국토교통부는 FRMS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계획이다. 조종사의 피로를 유발하는 비행 시간, 시간대, 시차 등 다양한 요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이를 바탕으로 1회당 근무 시간을 최대 30%까지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권고사항으로 아직까지 국내 항공사에서 이를 따르는 곳은 전무하다.
국내 항공사에 8년간 조종사로 근무 중인 한 조종사는 “피로도가 높은 비행을 하고 나면 체감상 이틀 정도는 지나야 신체리듬이 돌아온다”며 “국내 항공사들이 FRMS 도입을 꺼리는 이유는 결국 조종사가 휴식하는 동안 비행기를 운항할 조종사를 더 뽑아야 해 비용 부담 때문에 이를 꺼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명오 기자 myung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