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간 큰 보이스피싱 일당, 금감원까지 노렸다

입력 2025-09-10 16:07 수정 2025-09-10 19:02
연합뉴스

최근 금융감독원 직원들의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추정되는 한 사람이 금감원이 관리하는 금융권 통합 소비자 정보 포털 ‘파인’(FINE)을 노리다 들킨 것이다. 당시 상황은 이렇다.

지난달 말 금감원 홈페이지 묻고 답하기(Q&A) 게시판에 “A 자산운용사 직원이다. 우리 회사의 전화번호와 홈페이지 주소가 바뀌었다. 파인 내 ‘제도권 금융사 조회’ 메뉴에 기재돼 있는 정보를 수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그 글에는 작성자의 연락처와 A사의 사업자 등록증이 첨부됐다. 그 글을 본 금감원 직원은 파인 내 정보 수정 절차를 알려주려고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금감원 연락망에 있는 A사 직원에게 전화해 ‘정보는 이렇게 바꾸면 된다’고 했더니 그 직원은 ‘그런 글을 남긴 적 없다’고 답했다. 놀란 금감원은 내부 조사를 마친 뒤 사업자 등록증을 위조해 A사 직원을 사칭한 글 작성자와 그 일당을 수사해달라며 경찰에 넘겼다.

파인은 은행과 보험사, 증권사 등 여러 금융사와 업권별 협회에 분산돼 있던 금융 소비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한데 모아 보여주기 위해 금감원이 2016년 개설했다. 현재 예·적금 등 금융 상품의 금리 비교부터 숨은 자산 찾기, 사기 예방 교육, 금융 분쟁 절차 안내 등 기능이 제공된다. A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일당이 노렸던 제도권 금융사 조회 기능의 경우 금융 당국에 등록돼 관리되는 금융사를 이름으로 검색해 전화번호와 홈페이지 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 ‘KB자산운용’을 검색하면 홈페이지 주소란에 ‘www.kbitm.co.kr’이, 전화번호란에 ‘02-2167-8200’이 나오는 식이다<사진>.


금융 소비자 정보 포털 ‘파인’(FINE) 캡처

제도권 금융사 조회 기능은 특정 금융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일당의 연락을 받은 금융 소비자가 해당 금융사의 공식 전화번호와 통화하고 있는 것인지, 접속하라고 받은 홈페이지 주소는 올바른지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다행히 시도 단계에서 적발했지만 만약 파인이 뚫렸다면 금감원이라는 금융 감독 기관의 신뢰도에 심각한 위협을 가할 만한 심각한 사건”이라면서 “보이스피싱 일당이 금감원까지 노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A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일당이 전화를 받았더라도 파인이 뚫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각 금융사의 재무 지표 등 정보를 주기적으로 받는데 전화번호나 홈페이지 주소가 바뀌었다면 이 채널로 통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업권별 감독국의 총괄팀 담당자가 해당 정보가 맞는지 한 차례 더 확인한 뒤 정보를 수정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파인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매뉴얼을 완비해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이스피싱 일당이 개별 금융사를 넘어 감독 기관인 금감원까지 노리는 시대가 된 만큼 금융권 전반의 보안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요즘 보이스피싱 일당은 인공지능(AI)까지 동원해 허점을 찾아내므로 금감원이 자랑하는 매뉴얼은 언제든 구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면서 “보이스피싱 피해에서 금융사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능동 보안’ 체계를 도입해 사후약방문식 대응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