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낳으면 목사 만든다더니, 4대째 그렇게 됐다

입력 2025-09-10 15:48
유진선(왼쪽) 세종 늘사랑교회 부목사와 할아버지 유병기(가운데) 목사, 아버지 유관재 목사가 10일 서울 여의도 침례진선(왼쪽) 세종 늘사랑교회 부목사와 할아버지 유병기(가운데) 목사, 아버지 유관재 목사가 10일 서울 여의도 기침 총회회관 앞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강단에서 선 세 남자가 눈물을 흘렸다. 지난 7일 세종 늘사랑교회(김웅년 목사)에서 열린 목사 안수식 현장에서다. 유관재(66) 전 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 총회장의 차남 유진선(35) 목사가 목사 안수를 받으면서 유 씨 가문은 1대 유태근(1912~2007) 2대 유병기(90) 3대 유관재 목사에 이어 4대째 목회자를 배출했다.

10일 서울 여의도 기독교한국침례회 유지재단에서 만난 유병기 목사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눈물이 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3대 유관재 목사는 “다시 안수를 받는 기분이었다”고 심경을 전했다. 4대 유진선 목사는 “행사를 준비하며 부담이 컸지만 막상 예배가 시작되니 감동과 은혜가 밀려왔다”며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함께 손을 얹고 기도해주던 순간은 목회의 역사가 이어지는 듯했다”고 말했다.

유병기 목사와 유관재 목사가 지난 7일 세종 늘사랑교회(김웅년 목사)에서 열린 목사 안수식에서 유진선 목사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고 있다. 유관재 목사 제공

무려 19명의 교역자를 길러낸 이 가문의 신앙은 유관재 목사의 증조할머니에게서부터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자녀가 없어 마음 아파하던 그녀는 길 가던 선교사로부터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으라”는 말을 듣고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간절히 기도하던 그는 “아들을 주시면 주의 종으로 드리겠다”는 서원을 드렸다. 이후 네 아들을 얻었고, 그 가운데서 목회자들이 배출됐다. 장남 유세근 목사는 서울신학대 교수이자 독립문성결교회 목회자로 사역하다 6·25전쟁 때 납북됐다.

고 유태근 목사는 기침 제34대 총회장을 지냈다. 기침 제공

유태근 목사는 둘째 아들로 기침 목사가 돼 충북 청주에서 교회를 개척했고, 1979년부터 이듬해까지 기침 제34대 총회장을 지냈다.

유병기 목사는 방학이면 자녀와 손주들을 산으로 데려가, 기도 훈련을 시키곤 했던 선친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늘 부지런했고 교회를 첫째로 삼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도 교회를 사랑하고 충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는 1960년대 서울 마포구에서 성광침례교회를 개척해 지역의 양극화된 현실 속에서 구제 중심의 목회를 펼쳤다.

부촌과 빈촌이 공존하던 곳에서 교회 재정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썼다. 그는 “양극화가 심했던 동네였다.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이 함께 어울리도록 힘썼다”고 했다.

3대 유관재 목사가 교회를 맡을 때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서울에 아파트가 들어서던 시기였다. 중산층 교인들이 잠실 일대로 대거 이주해 나가고 망원동의 가난한 주민들만 남아 교회는 많이 축소돼 있었다. 유병기 목사가 세운 후임자는 교인 투표에서 부결되며 교회는 담임자 공백 상태였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유관재 목사가 강단을 이어 받았다.

“영주권도 있었고 더 좋은 제안도 있었지만 결국 아버지가 세운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사례비도 사택 제공도 없는 어려운 교회를 맡았지만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목회에 전념했습니다.”

그는 이후 교회를 경기도 고양으로 옮겼고, 교회는 성장하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기침 제106차 총회에서 총회장으로 선출돼 1년간 교단을 이끌었다. 현재는 성광침례교회를 후임자에게 넘기고 ‘선교목사’라는 이름으로 목회 제2막을 이어가고 있다.

유관재 목사는 “아버지는 어린 시절에도, 목회를 물려주신 뒤에도 뭔가를 강요하지 않으셨다. 뭐든지 스스로 선택하게 두셨다”며 “덕분에 창의성이 생겼고 목회와 성경 연구도 내 결정으로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선대에서부터 내려오던 성실과 교회 사랑의 정신도 고스란히 물려받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유진선 목사는 선대와는 또 다른 환경 속에 목회 여정을 시작하고 있다. 보험 계리사를 꿈꾸며 미국 대학에 진학했으나 “한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지 않겠느냐”는 어머니의 말에 목회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목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변했다. 권위보다 동행을 기대한다”며 “하지만 이런 변화 속에서 교회가 본질을 회복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관재(오른쪽) 전 기침 총회장과 가족들이 10일 서울 여의도 기독교한국침례회 유지재단에서 손을 맞잡았다.

아버지 유관재 목사는 자신이 목사가 될 때와 달리 정체와 하강 곡선을 그리는 한국교회 상황 속에서 힘든 길에 접어드는 아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고 했다.

“저는 목사 되라고 아들에게 한 적 없어요. 사실 목사가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에. 피해갔으면 좋겠는 마음이 오히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귀한 목회의 유산이 쪼그라들지 않고 다음세대로 이어진다는 게 참 귀하고 감사합니다.”

유진선 목사는 “비록 녹록치 않은 상황이지만 이 시대에 우리 가문을 불러주신 하나님의 뜻이 있으리라 본다”며 “삶으로 전해진 유산을 직접 보고 배우며 자란 것 자체가 제겐 큰 힘이다. 지금 제 목회 길을 지탱하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선대가 지켜온 신앙의 뿌리를 이어받되,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목회적 감각을 더해 다음 세대를 세우는 데 힘쓰겠다”고 했다.

세 사람은 대화를 마치며 손을 맞잡았다. 격변의 시대마다 이어져 온 신앙의 유산이 다음 세대로도 흘러가기를, 또 흔들리는 한국교회가 다시 제 길을 찾기를 함께 기도했다.

글·사진=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