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자살유족 동료지원활동가 전지훈(43·사진)씨는 15년 전 아버지를 잃었다. 평소 “쉬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던 아버지는 2010년 가을 어느날 새벽,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 그 누구도 아버지이자 아들이자 남편의 자살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9일 경기도 구리시 자택에서 만난 전씨는 국민일보에 “‘아버지는 왜 죽었을까’, 답을 알 수 없는 이 질문이 마음의 짐이 돼 수년 동안 머리 속을 헤집어 놓았다”며 “미리 알았다면 (아버지는) 죽지 않았으리라는 후회와 죄책감이 몰려왔다”고 말했다.
자살은 당사자 한 명이 죽고 마는 일이 아니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자로 사망한 수는 1만4439명이다. 국내에서 매일 약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관계의 너비와 깊이에 따라 가족은 물론 친구와 직장동료까지 자살 영향권에 놓인다. 이 중 자살 유족은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전씨는 자살 유족이 크게 겪는 감정은 죄책감이라고 말한다. 당시의 그는 3~4개월 가까이 방 안에 틀어박혀 지냈다. 자신이 겪던 불안·강박 장애가 아버지에게도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상실감을 느낀 어머니는 남편 묘에서 두 차례 자살 시도까지 했다. 신혼 생활을 하던 누나는 배우자와 다투는 등 불화를 겪기도 했다.
전씨는 “(아버지의 자살) 이후 가족끼리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는 데 10년이 걸렸다. 서로 죄책감처럼 힘든 감정을 들춰낼까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아버지의 자살 2년 만인 2012년 서울시 자살유족 자조모임인 ‘자작나무’에 참여하면서 치유와 회복을 시작했다. 스스로 우울감과 고립감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지금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서 매년 자살 유족 300명을 조력하는 동료지원활동가로 성장했다. 전씨는 “10년 넘게 다양한 유족들을 만나면서 스스로 성장도 하고 계속 회복하는 과정에 있다”며 “함께 애도하는 일은 내 안의 슬픔을 담아내는 그릇을 키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자살유족이 모이면 서로를 위로하지만 이따금 상처를 주는 일도 벌어진다. 은연 중에 “나는 자식을 잃었다”와 같이 죽음의 무게를 저울질하거나, 경제·문화적 배경이 달라 다른 유족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다. 동료지원활동가는 이를 중재하고, 애도를 위한 규칙을 세운다. 전씨는 “각자의 입장과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애도에 정답은 없다. 다만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다 보면 자신이 가진 상처를 바라보는 각도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전씨는 자살 유족이 다른 유족을 돕기 위한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동료지원활동가들이 거점 삼을 ‘동료지원센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 속한 동료지원활동가는 60여명 수준인데, 생계 등의 이유로 실제 활동 기간과 인원은 부족한 형편이다. 전씨는 “현재 동료지원에 대한 지원은 생계 유지가 불가능한 봉사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유족이 유족을 돕는 게 자살률을 낮추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10일은 정부가 정한 자살예방의 날이다.
구리=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