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대학생 ‘채식주의자’

입력 2025-09-10 05:04

서울 A대학에 재학 중인 채식주의자 B씨(28)는 매주 금요일 학교 구내식당에서 열리는 채식 뷔페를 이용한다. 하지만 다른 평일에는 채식 메뉴가 라면밖에 없어 구내식당 이용이 어렵다. B씨는 “다른 날엔 도시락을 싸오거나 인근 채식 식당에서 먹을 수밖에 없다”며 “채식 메뉴를 파는 외부 식당은 걸어서 30분이나 떨어져 있어 끼니를 거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 대학가에서 ‘채식 학식’을 찾는 수요는 늘고 있지만 서울 주요 대학 중 채식 메뉴를 상설 운영하는 대학은 절반에 못 미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학교가 첫 발을 뗐지만 품목도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대학가에 따르면 서울 주요 대학 10곳 가운데 서울대·연세대·고려대·중앙대 4곳만 학내 식당 또는 입점 음식점을 통해 채식 메뉴를 마련하고 있다. 샐러드, 샌드위치, 대체육 요리를 3900원에서 1만원 정도에 판매한다.

대학 측은 종교나 환경, 건강, 지향 등 다양한 이유로 채식을 하는 학생 수요와 외국인 유학생 증가 추세를 고려했다는 입장이다. 서울시가 지난해 시행한 서울 시민 먹거리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3435명 중 채식 비율은 15.8%로 집계돼 2021년(7.1%)보다 배 이상 증가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올해 고등교육기관 외국인 유학생 수는 25만3434명으로, 전년보다 21.3% 늘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다른 대학들의 경우 채식 메뉴 운영기간이나 방식이 한정적이다. 한양대의 경우 2주에 한 번 채식의 날을 운영하고 있다. 서강대 등은 학식이 아닌 학내 입점 음식점에서 채식 메뉴를 판매한다. 일부 학생들은 채식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간식 사업에 채식 옵션을 추가하는 등 자발적인 방식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선 채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메뉴나 불완전한 원재료 표기에 대해 불만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대 4학년 송태현(25)씨는 “일부 채식 식당은 운영 초기에 조리사가 소스류 등의 원재료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며 “여러 문제로 정상적인 식사가 어렵다고 판단해 지난 1년간 휴학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채식 학식 제공을 수요·공급 관점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윤지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채식 학식은 다양한 구성원이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포용성의 문제”라며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해 맛이 있는 건강 메뉴로 수요를 넓히고, 공유 주방·간편식 판매 등 인프라 지원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찬희 기자 becom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