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8일 첫 영수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여러 차례 치켜세웠다. “오랫동안 되풀이돼 온 정치보복 수사를 끊어낼 적임자” “이 대통령께서 큰 역할을 해달라” 등 발언이 대표적이다. 전당대회 직후 “이재명 정권을 끌어내리겠다”며 대여 강경 투쟁을 예고했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반대로 국민의힘 향해 내란 공세를 펼쳤던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선 “악수하기 위해 마늘과 쑥을 먹었다”며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번 회담에 앞서 당정 분열을 적극 활용하는 ‘이간계(離間計)’를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개혁 등 주요 현안을 두고 벌어지는 당정 간 엇박자를 파고들어 야당의 활동 범위를 넓히고, 요구사항을 부드럽게 관철시키겠다는 의도다. 장 대표가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대통령의 역할”을 강조한 것도 이 대통령과 정 대표 등 민주당 강성 세력 사이의 균열을 겨냥한 발언이었다는 후문이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9일 통화에서 “의도한 이간계가 맞는다”며 “이 대통령은 전체 국민의 이익을 대표해야 하는 입장인 반면,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는 정 대표는 계속 강경 노선으로 끌고 가려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특히 지도부는 30분가량 이어진 비공개 회담에서 검찰청 해체 등 정부조직 개편과 관련해 “정부에도 레드팀이 필요하다” “야당 의견을 충분히 듣겠다” 등 이 대통령의 발언을 이끌어낸 것을 주요 성과로 보고 있다. 이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레드팀’까지 거론한 마당에 여당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 긴장관계 사이에서 국민의힘 입장을 반영시키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민주당이 추진 중인 ‘더 센 특검법’ 개정안,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 등 야당을 정면으로 겨눈 사안에 대해선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 대표는 공개 모두발언에서 “재의요구권을 행사해달라”고 건의한 바 있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장 이 대통령이 ‘우리가 앞으로 안 하겠다’ 이렇게 나올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라며 “이 대통령도 국민의힘과 적극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정 대표를 견제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을 것”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강공으로만 가다가는 사고는 민주당이 치고 책임은 대통령이 나중에 다 뒤집어쓸 수 있다는 우려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언석 원내대표도 전날 정부 조직 개편안에 대해 “이제 여의도 대통령은 명실상부 정청래 대표인가보다”라며 당정 분열을 공개 언급했다. 이 대통령이 충분한 공론화를 당부하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는 정밀 개혁을 주장했음에도 여당 대표가 자기 뜻을 관철했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부족한 의석수를 극복하고 거대 여당을 견제하기 위해 대통령실을 일종의 레버리지로 활용하겠다는 셈인데 이같은 전략이 실제로 통할지는 미지수다. 다만 이간계가 먹혀들지 않을 경우, 영수회담에도 불구하고 여권이 또다시 협치를 거부했다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대통령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이전과 같은 입장이 나온다면 우리도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첫 영수회담을 두고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선 ‘일단 지켜보자’는 기류가 다수지만, 일각에선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제대로 싸우는 당대표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장 대표가 의원총회에서 “할 말을 다 하고 왔다”며 회담 성과를 보고한 자리에서도 의원들은 박수 등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한 재선 의원은 “장 대표가 아직 싸울 준비는 안 된 것 같다”며 “의원들도 일단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우진 이강민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