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에 축적 1대 5000 정밀지도 반출을 거듭 요구하고 있는 구글이 고위 임원을 급파해 한국 당국의 우려 사항에 대한 논의 진행 상황을 공개했다. 지도상에서 위·경도값을 삭제하고 안보시설 이미지를 블러(흐림) 처리 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짓고 지도 정보를 국내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당국의 요구에 대해서는 기존의 ‘불가’ 입장을 유지했다.
구글은 9일 서울 강남구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밀지도 반출 관련 논란에 대해 설명했다. 간담회에는 구글코리아가 아닌 미국 본사 담당 임원인 크리스 터너 구글 지식·정보담당 부사장이 방한해 참석했다.
구글은 우선 한국 정부의 우려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지도에 한해서는 국내외 이용자 모두가 위도·경도값을 조회할 수 없도록 조치하겠다고 공언했다. 안보·군사 등과 관련된 민감한 시설에 대해서는 “항공 사진은 위성 업체들이 판매·배포하는 것으로, 구글맵과 관계가 없다”면서도 “최대한 정부 요구에 맞추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데이터센터를 국내에 짓고 지도 정보를 한국에서 처리하라는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터너 부사장은 “한국 영토에 데이터센터를 설립하는 것은 구글맵과 관련이 없다”며 “설사 한국에 물리적인 데이터센터를 짓더라도 데이터 처리는 해외에서 해야 하는 것이 현재의 기술적 제약”이라고 말했다.
구글·애플 등 해외 빅테크가 한국 정부와 협상 중인 사안에 대해 기자회견까지 열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구글은 그간 정밀지도 공개와 관련해 논란이 일어도 공개적으로 나서서 설명이나 해명을 하는 대신 주로 블로그 게시글 등 우회적인 방법을 취해 왔다.
하지만 인공지능(AI) 사업 영역이 빠른 속도로 팽창하자 구글맵 활성화 포석을 깔기 위해 보다 공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간·이동 데이터는 자율주행·모비리티·마케팅 등에 필수적인 핵심 데이터다. 구글은 대부분 주요 국가에서 구글맵을 통해 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지만 네이버·카카오가 지도 시장을 장악한 한국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신사업에 대한 구글의 방향성은 이날 간담회에서도 드러났다. 스테파니 표 글로벌 프로덕트 파트너십 리드는 구글맵 관련 발표에 앞서 신규 사업인 ‘환경 인사이트 익스플로러(EIE)’를 소개했다. 이는 특정 지역의 신호등을 AI로 자동화시켜 교차로상 교통체증을 해소하고, 이를 통해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프로젝트다. 표 리드는 이에 대한 설명을 하며 “이미 사업이 도입된 멕시코시티, 벨버른과 달리 한국에서는 아직 사례가 없다. 이런 혁신은 구글지도가 완전히 기능할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정보지리원은 다음달 국외반출협의회를 재차 열고 지도 반출 허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