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끝까지’ 미전도 종족 선교 선봉 MMI(Maranatha Mission International)를 이끌고 있는 5명의 공동 대표 맏형격인 허온유 선교사.
그는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등 이슬람 국가에서도 주로 최악의 상황인 난민촌에서 20여 년 훨씬 넘게 하나님을 전파하고 있는 ‘난민촌 선교 사역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선교사다.
허 선교사는 사역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며 최전선에서 실천한다.
그는 “사람을 섬기는 것”이라고 단정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 섬긴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허 선교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으로, 그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사람이 말씀으로 생각하고 말씀으로 말하고 말씀으로 행동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게 섬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 선교사는 선교 사역을 감당하는 국가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게 최종 목표다.
그는 “사역이 사람을 섬기는 일이고, 그걸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해 마침내는 하나님을 내 구주로 영접하게 하는 거잖아요”라며 “삶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또 이웃에게 전파가 돼 결국 그 곳이 최종적으로는 그리스도국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게 소망”이라고 방점을 찍었다.
이런한 허 선교사가 한때는 열성적인 학생운동권, 그것도 주사파(1980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한, 북한의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삼은 남한의 반체제 운동 세력) 대학생이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유물론적 사고로 주변이 포위됐던 시기가 있었던 것이다.
기자는 8일 허 선교사를 만나 자초지종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 뒤늦게 고교시절 찾아온 사춘기…하나님이 역할을 제대로 안 하신다?
-초등학교 3학년때 어머님의 전도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중학교 때까지는 진짜 교회 생활은 물론 학교생활도 열심히 했다. 학교 생활에서는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특히 친구들하고 잘 놀며 원만하게 지내는 아이였다. 문제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다. ‘갑자기 우울한 나의 현실이 보이더라.’ 집이 가난한 것이 서글프고, 환경 적응도 안 되면서 친구를 잘 못 사귀는 것 같고 성적도 잘 안 나오면서 이제 사춘기가 왔다. ‘삐딱선을 타기 시작하면서 모든 게 부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역할이 부정적인 거예요.’ 하나님이 공평하신 분이고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면 이렇게 우리집이 가난한 게 이상하다, 이해가 안 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거다. 그 즈음에 뭔가를 하고 싶은데 공부는 잘 안 되고 해서 수업 시간에 몰래 소설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 저 책 다 읽다가 하루는 이문열 작가의 ‘사람의 아들’을 읽으면서 빠져들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사람의 아들’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고 ‘예수님 이야기인가?’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이문열 작가의 ‘교회가 현실 참여에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적인 역할을 한다’는 논지가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하나님이 계시는 건 내가 부정할 수 없는데, 하나님 역할을 제대로 안 하시는 게 맞다’는 확신을 이 소설을 통해 신념에 까지 이르게 된거다. 그 신념으로 고등학교를 대충 공부하고 졸업했다.
#나 같은 의인이 사회의 불의를 깨부셔야 한다…어떻게?
-공부를 열심히 안해 이른바 ‘좋은 대학교’는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영어는 전공으로 대학교에 진학해 잠시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하지만 별로 아닌 것 같고, 그러던 차에 1학년 말 때 같은과 4학년 선배가 총학생회장이었는데 우러러 보이면서 총학생회 사람들하고 서서히 어울리게 됐다. 내가 뭐 하나 꽂히면 열심히 하는 성격이라 2학년 1학기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총학생회 활동을 시작했다. 활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 자연스레 선배들하고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고교시절 이문열씨 소설 ‘사람의 아들’을 통해 나름 정리했던 ‘하나님은 계시지만 역할을 하지 않는다’와 주사파 선배들이 가지고 있는 유물론 사관의 핵심인 ‘신은 없다’는 주장이 교묘하게 맞아 떨어지더라. 그러면서 ‘하나님이 하셔야 되는데 안 하시고 계시니 나 같은 사람이 해야지’ ‘사회가 부조리가 많고 나는 그 부조리를 알아보는 의인의 눈을 가졌으니 나 같은 의인이 사회 불의를 바꿔놔야 된다’ 등 일종의 책임의식으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데 당시 나는 주체사상이 좋아서가 아니라 사회를 바꿔야 되는데 하나님이 역할을 안하시니 내가 나서야 한다는 소명의식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내가 시위는 물론 엄청난 주체사상 교육 속에서 끊임없이 세뇌돼 진짜 하나님을 부정해보려해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부정이 안 되더라. 단적인 예로는 주일 날 시위가 있을 때는 새벽에 1부 예배를 드리고 시위 현장에 가곤 하면서 주일을 꼭 성수했다. 물론 저의 대학부 담당 목사님, 교회 담임 목사님, 그리고 어머님의 끊임 없는 기도 덕분이기도 하지만요.
마침내 2학년 2학기에 있었던 단과대학 회장 선거에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 저의 주사파 학생운동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탄탄한 운동권 조직을 기반으로 선배들도 열심히 돕고 나도 최선을 다해 내가 단과대학 회장이 되는 것은 ‘따논 당상’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는데 선거운동도 토론에서도 절대 열세로 여겨졌던 비운동권 후보에게 어이없게 패배했다. 제가 표 차이를 지금도 기억하는 데 36표 차이로 졌다. 운동권 선배들도 너무 말도 안 되니까, 재검표를 두 번이나 했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의 은혜다. 우리 어머니가 나중에 그걸 아시고 ‘내가 진짜 기도했다.’ 그러시더라고요.
어쨌건 당시에는 패배가 믿어지지 않아 ‘나의 인생에 있어 더 비참한 것이 있을까’라는 절망감 속에 도피처가 절실했고, 군대를 선택했다. 선배들의 ‘군대 가면 큰일 난다’ ‘그동안 쌓아온 주체사상 다 까먹고 반공사상으로 물들어온다’ 등의 온갖 회유를 뒤로 하고 말이다.
#도피처 군대 생활, 지독한 반공교육이 기다리고 있었다?
-논산훈련소 훈련 6주 마치고 자대 배치하는 전날 저녁에 어디선가 지프차 두 대가 들어와 시커먼 선글라스 낀 몇 명이 내리더니, 우리들을 내무반 복도에다 쭉 세웠다. 그리고선 한 명씩 차트를 보면서 자꾸 뭘 체크하더니, 그 다음 날 자대 배치 발표가 났는데 저하고 몇몇 친구가 특공여단으로 배치됐다. 어떻게든 편한데 가고 싶은데 특공여단 배치라고 하니 하늘이 노랗더라. 거기에다 저희 부대 임무가 적후방 침투·교란작전이고 저는 1등 저격수였다. 때문에 훈련이 낙하산 훈련은 기본에다 지독한 훈련으로 엄청 빡셌다. 더욱 가관인 것은 유사시 적후방에 침투해 요인 암살이 주 임무다 보니 투철한 반공의식으로 고양돼야 한다며 반공교육이 더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대학교에서 2년 반 동안 주체사상을 죽어라 공부해 그게 맞다고 생각했고, 삶을 던져 진짜 죽으라고 시위하고 다녔는데 이제 정반대의 반공 이념이 나를 세뇌시켰다. ‘주체사상은 잘못된 거고, 반공 사상이 맞다’며 자꾸 영상 보여주고 북한이 남침한 필름 영상 보면서 북한은 나쁜 놈들 저런 놈들이 우리나라를 유린시켰고 소련이 배후에서 사주했다. 거기에다 중공군이 개입하는 객관적 자료를 보니 어느 사이 특공대 전투의지가 막 불타오르는 거에요. 이런 와중에 병장 달고 제대할 때가 되니까 내가 너무 혼란스러웠다. ‘뭘 붙잡고 살아야 되나’ 내가 대학 때 배웠던 주체사상이냐? 아니면 군대에서 배운 반공이 맞냐? 정말 혼란스러웠다.
#“무한한 신을 유한한 인간이 이해하려는 노력은 어리석은 짓이다.”…모든 게 정리됐어요
-이제 제대시 얼마 안 남았고, 제대하기 전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고 아무것도 훈련 안 시킬 때 내부반에 혼자 남게 됐다. 너무 심심한 차에 우리 부대에 작지만 도서관이 하나 있어 ‘책이나 읽자’며 찾은 도서관에서 희한하게도 문제의 이문열 작가의 ‘사람의 아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내가 고교시절에 이 책을 읽고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한 번 더 읽어보자’며 읽었다. 정독을 하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내가 성경을 읽을 때 예수님 만난 것도 있지만 군대에서 소설책 보다가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사람의 아들’을 다시 읽는데 에필로그에 ‘무한한 신을 유한한 인간이 이해하려는 노력은 어리석은 짓이다.’라는 글귀가 있었다. 분명 이 글귀는 내가 고교시절 읽을 때도 똑같은 책에 있었지만 그때는 안 들어왔고, 이때 나에게 들어와 나를 철저히 깨뜨렸다. ‘무한한 하나님을 유한한 인간이 다 이해하려고 한다는 거는 말도 안 되는 짓’이라 이거죠. 하나님은어느 누구보다 더 크신 분인데 내 머리 한 평도 안 되는데 이걸로 하나님을 내가 알겠다? 어불성설이지요. 내가 하나님을 완전히 곡해하고 있었다. 내 수준에서 하나님은 일하지 아니하시니 내가 하겠다. 이건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진짜 좁은 인생 차원에서 인본주의에 완전히 쪄들어 가지고 신을 이해하려고 했던 내가 그 한마디로 깨졌다.
‘이게 맞구나’ 무릎을 탁 치고 책을 갖다 놓고, 2년 반 동안 관물대에 처박아놨던, 군대 갈 때 교회 누님이 준 일명 ‘포켓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말씀을 읽으며 예수님에 대한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불타 올랐다.
주체사상도 반공도 아닌 오직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땅 끝까지’ 미전도 종족 선교의 삶이 나의 전신을 휘감게 됐다.
수원=강희청 기자 kangh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