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케냐 코어의 어린 과부와 아이들, 외로운 눈물 닦는 선교사 부부

입력 2025-09-09 06:05 수정 2025-09-09 15:00
케냐 북부 마르사빗주 코어에 사는 렌딜레 전통부족 과부 네베요(22). 오른쪽은 네베요와 자폐를 앓고 있는 그의 아들이 원형 초가 앞에 서 있는 모습.

케냐 북부 마르사빗주 코어 지역, 유목 생활을 하는 렌딜레 부족이 살아가는 마을엔 쉽게 분해하고 재조립할 수 있는 이동식 원형 초가가 모여 있다. 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천 조각과 옷가지를 덮어 만든 9.9㎡(약 3평) 남짓 초가 내부는 좁고 환기가 안 돼 숨막히게 덥다.

지난해 12월 남편을 잃은 네베요(22)는 이런 집 안에서 두 아들과 살아간다. 이 중 5살 작은 아들은 자폐를 앓고 있다. 네베요는 19살에 50대 남편에게 시집왔다가 남편이 설사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 과부가 됐다. 렌딜레 전통에 따라 남편을 잃은 여인은 재혼할 수 없다. 이른 나이에 홀로 남은 네베요 역시 재혼과 함께 생계의 길도 막힌 상태다.

네베요와 아이들은 18년째 이 지역에서 사역해 온 최인호·한지선 선교사 부부로부터 최근 설탕과 옥수수 콩 한 포대를 전해 받아 끼니를 이었다. 기자를 만난 네베요는 힘없이 미소 지으며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만 말했다. 그의 눈빛엔 고독과 힘겨움이 서려 있었다.

과부 지원 프로그램의 시작
최인호, 한지선 선교사가 새로 연결된 과부의 옆에 나란히 서 있다.

네베요를 지원한 건 최 선교사 부부가 이 지역 과부 270가정을 돌보며 운영하는 ‘과부 지원 프로그램(Widow Program)’의 일환이다. 최 선교사 부부는 2018년 한국교회 단기선교팀과 고보레 마을을 방문했다가 네 자녀를 홀로 키우던 과부 메이싼(41)을 만난 걸 계기로 과부 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당시 메이싼은 다리 암으로 5년 전 한쪽 다리를 절단한 상태로, 극심한 빈곤 속에 남편 무덤 옆에서 살고 있었다. 지금은 한국교회의 후원으로 의족을 착용하고 두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됐다. 그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식량을 살 수 있어 감사하다”며 “아이들이 건강히 자라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최 선교사는 “남편이 병이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거나 유목 생활 중 독사에 물리고 강도에게 살해당하는 등 사고로 과부가 된 경우도 많다”며 “십대 과부도 드물지 않다. 그런데 대부분 부족어밖에 몰라 다른 지역으로 나가기도 어렵다”고 전했다.

당장 생계를 유지할 방법조차 없는 이들을 위해 최 선교사 부부는 생활비 지원을 시작했다. 마을에서 가장 어렵게 사는 가정을 추천받아 한국 성도들의 후원으로 가정당 월 3만원씩 지원하는 방식이다. 들어오는 후원금 전액이 고스란히 생활비로 지원되기에 선교사들의 현지 비용은 모두 자비량이다. 환율 악화로 부족한 부분도 최 선교사 부부가 직접 감당하고 있다. 최 선교사는 “심방을 가면 여전히 끼니를 이웃에게 빌어먹는 과부가 많다”며 “그럼에도 ‘하나님이 당신을 잊지 않으셨다’는 말 한마디에 눈물로 감사하는 과부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낀다”고 말했다.


과부 위한 기도 모임과 예배로

메이싼은 다리 암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했지만 현재는 한국교회의 후원으로 이뤄진 과부 사역을 통해 플라스틱 의족을 하고 있다.

하파레 마을에서 세 아들을 홀로 키우는 키모골(32)도 이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는다. 키모골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의 둘째 부인이었다. 최근 첫째 부인마저 병으로 숨지면서 그의 자녀 두 명까지 책임지게 됐다. 안정적 수입 없이 아이 다섯을 키워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키모골은 과부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생활비와 별개로 암컷 염소 두 마리도 지원받았다. 이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한지선 최인호 선교사(가운데)가 과부사역으로 돕고 있는 270명의 과부들과 월말 모임을 가진 후 찍은 단체 사진.

둡사하이 마을 과부들은 매주 금요일 한지선 선교사와 함께 ‘마마 기도 모임’을 갖고 기도를 배운다. 또 모든 마을의 과부들은 매월 마지막 날 센터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복음을 듣는다. 생활비 지원도 이때 이뤄진다.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에는 옥수수가루 5㎏이나 특별 선물이 전달된다. 충분하지 않은 지원에도 과부들은 하나님과 후원자들에게 감사한다.

갈리 모글레 마을에 사는 미샐론 오르구바(50)는 10명의 자녀를 홀로 키우며 지난해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 그는 “예수님께 기도하면 응답해주신다는 믿음이 생겼다”며 “선교사들과 마마기도모임을 통해 신앙이 깊어지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사역의 열매가 된 자녀들
한지선 선교사가 마마기도모임에서 둡사하이 마을 과부들과 찍은 사진. 한 선교사 제공

2007년부터 코어를 찾던 최 선교사 부부는 미션NGO 기아대책의 파송으로 2011년 세 자녀와 함께 정착했다. 2010년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부르심이 결정적이었다. 최 선교사는 한 교회에서 “결연 아동이 전갈에 물려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급식과 교복은 제공했지만 예수님을 전한 적은 없었다”며 “그날 밤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보낸 이유가 그것인데’라 말씀하신 것 같아 밤새 회개했다”고 고백했다. 이후 그는 사역의 우선순위를 ‘생존 지원’에서 ‘복음 전파’로 분명히 바꾸었다.

한 선교사도 “같은 해 찬송가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가 마음에 울려 퍼지며 ‘지선아, 세상은 잠시다. 나와 뜨겁게 살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며 “이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전기도 수도도 없는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렌딜레 부족 아이들이 전통 원형초가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코어에 정착한 부부는 큰아들을 나이로비 기숙학교에 보내고 두 딸은 홈스쿨링으로 가르쳤다. 열악한 환경 속에 눈물도 많았지만, 자녀들은 부모의 사명을 이해하고 함께 신앙으로 성장했다. 한 선교사는 “우리가 한 것은 말씀과 기도뿐이었다”며 “세 아이가 모두 신앙을 지키고 선교의 꿈을 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다.

세 자녀는 지금 각자 분명한 부르심을 품고 있다. 큰아들 성민(24)은 케냐 선교사 자녀 중 첫 번째로 의대생이 됐다. 그는 케냐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병원에 가지 못해 쉽게 목숨을 잃는 친구들”을 보았고 그 경험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의료선교사의 꿈으로 이어졌다.

(왼쪽부터) 최인호 선교사, 성아, 성민, 성연, 한지선 선교사.

둘째 성아(20)도 케냐에서 태어나 사람을 살리고 돕는 일을 평생의 사명으로 삼고 미국 칼빈대 간호대에 진학했다. 유학생임에도 불구하고 4년간 학비와 기숙사비를 장학금으로 받았고 매일 새벽부터 아르바이트해 모은 돈으로 과부 사역을 돕고 있다.

막내 성연(15)은 아직 고등학생으로 어린 시절부터 홈스쿨링과 국제학교 교육을 병행하며 믿음 안에서 성장했다. 그는 “‘엄마 아빠가 편히 살 수 있는데 왜 사막에 들어가 계실까’ 고민한 적도 있지만 여기 와 보면 하나님이 꼭 필요로 하시는 자리임을 알게 된다”며 “사람들을 돕는 부모님의 삶이 존경스럽다”고 고백했다.

광야에 내린 단비

지난해 케냐 코어 땅에 비가 내리고 들판에 노란 꽃이 가득 피었다. 한 선교사 제공

코어 지역은 연중 비가 내려도 10일이 채 안 되는 메마른 땅이다. 그러나 지난해 큰비가 사흘 이상 내리자 황량한 들판에 노란 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한 선교사는 “당시 광경을 보며 ‘하나님, 정말 대단하세요. 씨앗도 없는 땅에 이렇게 예쁜 꽃을 피우시다니요’라고 고백했더니, 그때 주님은 “너희가 비야”라는 감동을 주셨다”고 전했다.

그는 “우린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주님은 우리를 이 땅에 은혜의 비로 보내셨음을 깨달았다”며 “코어의 영혼들에게 단비가 내려 영적 열매가 맺어지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최 선교사도 “선교 현장은 건물이나 환경은 금세 변할 수 있지만, 한 영혼이 변화되는 일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한국교회에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도 선교지를 위해 함께 인내하며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

코어(케냐)=글·사진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