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해킹·보이스피싱 피해를 차단할 주체 중 하나로 이동통신사를 지목하면서 이통사 업계의 고심도 커지고 있다. 우선 기금이나 펀드, 투자 형태로 사실상의 보안 체계 구축 비용을 떠맡게 되는 것 아닌지 우려한다. 특히 통신 3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는 재무적 여력이 부족한 대다수 알뜰폰 사업자의 보안 투자 비용까지 부담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모습이다.
8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통신 3사는 정부가 해킹·보이스피싱 피해 방지를 명분으로 업계에 요구할 수 있는 보안 강화 관련 시나리오에 대한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통신 3사 본사의 경우 이미 매년 매출의 상당 부분을 정보보호에 투자하고 있고, 3사 모두 보안 투자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문제는 알뜰폰사업자(MVNO)다. 정부는 대포폰 대부분이 알뜰폰으로 개통되고 있다며 알뜰폰 업체들을 향해 보안 대책을 주문했지만, 적자도 겨우 면하는 사업자가 많은 상황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 해킹·보이스피싱을 막을 만한 체계를 구축하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통신 업계에서 알뜰폰 보안 비용 ‘대납’ 같은 우려가 나오는 배경에는 통신업 특성상 정치권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환경도 자리한다. 통신 업계는 금융권과 함께 여전히 ‘관치’가 강하게 작용하는 곳으로 꼽힌다. 정부가 기업의 사업 방향성 등에 강하게 개입할 여지가 다른 산업에 비해 크다는 뜻이다. 민감기업임에도 가계통신비 절감이라는 정부 정책에 따라 통신요금을 올리지 못하는 등 제한이 적지 않다.
통신사들이 주파수 할당 등을 대가로 납부하는 방송통신발전기금이나 2002년 조성하고 올해 재편한 3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정보기술 펀드(KIF)도 사실상 정부 요구에 따라 정책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통신사들이 갹출한 자금 성격이 강하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업계 전체의 보안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통신 3사가 보안체계 구축 자금을 지원하게 되는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