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식인들의 얼굴이나 이름은 모르지만 동생의 심장과 눈, 장기를 갖고 어딘가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큰 위로가 됩니다. 그분들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 가족의 바람입니다.”
뇌사 시 장기기증인의 유가족 김은경(41)씨는 8일 서울 광장에서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2012년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이른 뒤 7명에게 새 생명을 나눠준 김휘중씨의 누나다.
서울시가 주최하고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주관한 ‘제12회 서울시 장기기증의 날 기념행사’가 이날 열렸다. 현장에는 도너패밀리(장기기증인 유가족) 62명, 생존 시 신장 기증인과 이식인 모임인 새생명나눔회 회원 43명 등 100여 명이 참석해 생명나눔의 가치를 기렸다.
이날 도너패밀리 9가정에는 기증인의 사진과 기증연도가 새겨진 ‘생명의 별’ 크리스털패가 전달됐다. 행사는 국민의례와 기증인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됐다. 유재수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이사장은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순간에도 생명을 나눠주신 기증인과 유가족들의 숭고한 사랑을 기리며, 오늘 서울광장이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생명을 살리겠다는 희망 선언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생면부지의 환자에게 신장을 기증한 이들에게도 ‘생명나눔 30년 기념패’가 수여됐다. 1995년 국내 최초 신장기증 릴레이 수술의 첫 주자였던 박동원(65) 목사는 “신장 기증 이후 이식인들이 내 가족처럼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그는 “30대에 삶이 힘들어 자살을 결심했을 때 시편 23편 4절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지키시는 사랑을 경험했다”며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며 선물을 드리고 싶었는데, 신장 기증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라는 감동을 받았다”고 간증했다.
장기 이식인의 감사 편지도 낭독됐다. 1993년 생존 시 신장을 이식받은 팽선강(49)씨는 거부 반응으로 25년 뒤 두 번째 이식을 받았다. 그는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두 번이나 신장을 이식받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생각이 깊어질 때쯤 모태 신앙의 아내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고 모든 고통의 시간이 헛되지 않음을 깨달았다”며 “저를 살려주신 기증인과 가족들에게 감사드린다. 그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기념식에는 생명 나눔의 숭고한 가치를 문화적으로 전하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다음세대에 생명 나눔의 의미를 전하기 위해 마련한 동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푸른 별’ 낭독회가 열렸고, 팬텀싱어2 톱3 출신 테너 안세권이 오페라 아리아 ‘네순 도르마’를 열창했다. 또한 지난 2월 아내에게 신장을 이식한 드러머 리노는 ‘아리랑’과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편곡해 드럼으로 연주, 참가자들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
서울광장에는 9개 체험 부스도 마련됐다. 시민들은 ‘생명나눔의 숲’ ‘연대의 벽’ ‘기적의 광장’ ‘희망의 정원’ 등에서 장기기증 희망 등록, 기증인에게 감사 편지 쓰기, 장기기증 퀴즈, 초록 리본 달기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생명나눔의 의미를 직접 체험했다.
연대의 벽에서 봉사한 배인영(37)씨는 “생명을 존중하는 활동을 찾다 우연히 캠페인을 알게 돼 봉사에 참여했다”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소중한 생명을 지녔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됐다. 이번 캠페인을 통해 많은 이들이 장기기증에 마음을 열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행사장을 찾은 김창희(35)씨는 “3년 전 후원하며 각막·신장·간 이식 등록을 했다”며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 좋아서 후원해왔는데, 다양한 부스 체험도 유익하고 행사가 매우 뜻깊다”고 소감을 전했다.
글·사진=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