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가명) 선교사는 최근 인터넷에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했다가 깜짝 놀랐다. 구글 검색창에는 자신이 어느 나라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그가 활동하는 곳은 종교 활동이 금지되거나 제한된 이른바 ‘닫힌 국가’. 불과 얼마 전 같은 지역에서는 복음을 전하던 현지인이 체포돼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박 선교사는 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보가 어디서 흘렀나 확인해보니 파송 교회 홈페이지에 선교 보고서, 일명 기도 편지와 사진이 그대로 올라와 있었다”고 말했다.
선교사 보안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교회 홈페이지, 주보, 기도 편지가 대표적인 노출 창구였다. 하지만 AI가 결합한 오늘의 환경은 상황을 단순한 과거 반복이 아니라 훨씬 심각한 현재 진행형 문제로 만들고 있다. 박 선교사는 “인터넷 자료를 거미줄처럼 긁어모으는 크롤링 기술이 AI와 결합하면서 차원이 달라졌다”며 “AI는 쌓인 단서를 퍼즐처럼 조합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다”고 했다.
기존 검색엔진이 키워드 중심으로 수많은 링크를 나열했다면 AI 검색은 일상 언어로 묻는 질문에도 곧장 요약된 답을 내놓는다. 흩어진 단서들을 하나의 그림처럼 묶어 보여주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광고가 뒤섞인 검색 결과를 뒤지던 과거 방식과는 다르다.
전통적인 ‘은폐 방식’도 무용지물이 됐다. SNS에서 선교사 호칭 대신 ‘선생님’을 사용한거나, 기도 편지에 ‘복음전도’를 ‘붜금줜도’로 바꿔 쓰던 방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AI는 낯선 철자도 본래 뜻을 해석해낸다. 단어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문장 전체와 맥락을 분석하기 때문이다. 박열방 전 기술과학전문인선교회(FMnC) 대표는 “과거의 편법은 더 이상 안전장치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술 발전에 따른 선교사 보안 강화는 국제 선교계에서도 주목하는 이슈다. 미국 텍사스에 본부를 둔 선교단체 프론티어벤처스(Frontier Ventures)는 최근 기관지 미션 프론티어스(Mission Frontiers)에서 “기업 해킹이 주로 금전 탈취를 노린다면 선교사 대상 사이버 공격은 생명과 직결될 수 있다”며 “유출된 통신은 사역 계획을 드러내고 현지 신자를 위험에 빠뜨리며 교회 네트워크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또 “기독교를 적대하는 지역 정부가 감시 기술을 통해 사용자명·전화번호·SNS 계정을 실제 인물과 연결해 심문·추방·투옥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강대흥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사무총장은 “누군가 마음만 먹으면 단시간 안에 선교사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며 “기도 편지는 말이나 인쇄물로만 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선교 보고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활동을 담은 기록은 몇 단계를 거치면 드러나기 때문에 취급에 주의가 필요하다”며 “기존에 올라간 자료도 삭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인터넷 환경은 한번 새어나간 정보를 되돌리기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이미 크롤링이 완료된 상황이라는 것. 삭제 뒤에 복제본이 남아 도는 문제도 개인 차원에서 수습을 어렵게 만드는 한 요인이다. AI는 이 복제본까지 추적해 연결한다.
기술 환경이 달라진 만큼 선교사들도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동현 교회정보기술연구원 원장은 “최근 기도 편지나 각종 문서를 AI의 도움을 받아 쓰는 선교사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며 “활용 자체를 막을 수 없다면 그만큼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선교사가 챗GPT로 기도 편지를 작성하면 내용이 외부 서버에 저장돼 학습에 쓰일 수 있다”며 “정보 공유 차단 기능을 하지 사용하지 않으면 민감한 내용이 그대로 넘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AI 발전 속도에 맞춰 보안 대책도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는 “보안 사고는 해킹보다 일상에서 더 자주 터진다”며 “공용 PC에서 로그아웃하지 않거나 ‘사은품 증정’ 같은 의심스러운 링크를 무심코 누르는 순간, 공격자가 심어둔 장치에 걸려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교회 홈페이지나 온라인에 흘러나온 자료는 별도의 해킹이 없어도 위험하다”며 “이런 정보가 크롤링으로 다 긁어모아지고 검색 한 번에 누구든 볼 수 있게 된다”라고 경고했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