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토끼몰이하나” “미국이 풀어줘야 가는 것” 구금시설 앞 긴 줄, 초조한 한국 직원들

입력 2025-09-08 07:51 수정 2025-09-08 13:02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 앞에 7일(현지시간) 구금된 한국 직원을 면회하러 온 동료 직원들이 줄을 서 있다. 임성수 특파원

“여기서 필요한 일은 볼트, 너트 조이는 단순 노동이 아니라 전문 인력이 필요한 노동이다. 미국에서 쉽게 구하기 어려운 인력인데도 비자를 구실로 토끼몰이하듯이 단속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7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 앞에는 오전 일찍부터 한국인들의 긴 줄이 늘어섰다.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HL-GA)에서 일하다 지난 4일 체포·구금된 동료들을 면회하러 온 한국 직원들의 대기줄이었다. 약 100여명 가량이 초조한 얼굴로 각종 서류와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부의 석방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진 뒤라 비교적 안도하는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불안과 불만의 목소리가 교차하고 있었다.

대기 줄에 서 있던 LG에너지솔루션의 한 협력업체 직원 A씨는 “ICE 급습 당일 E-2(주재원) 비자를 갖고 있어서 신원조회를 하고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3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며 “한국에서 전세기가 온다고는 하지만 미국에서 풀어줘야 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가 지난 4일 조지아주 한국 공장 단속 당시 비자 검사를 통과한 이들에게 준 문서. 임성수 특파원

그는 ICE 급습 당시 상황에 대해 “영화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헬기 소리가 너무 커서 다른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B-1(단기상용) 비자, ESTA(전자여행허가) 소지자는 거의 다 이곳으로 체포돼 왔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받은 ‘허가 문서’를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비자 단속 당시 ICE와 동행한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사진 촬영을 금지하며 찍은 사진을 삭제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구금센터에 수용된 300여명은 대부분 LG에너지솔루션이나 협력사 직원들이다. 면회를 온 이들도 대부분 같은 회사였다. 이들 중에는 지난 4일 ICE 등 이민 단속 당국의 급습 당시 영주권과 E-2 비자 등을 소지해 빠져나온 이들이 상당수였다.

외교부 현장 대책반 소속 직원들이 7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포크스천 구금 시설에서 영사 면담을 한 뒤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임성수 특파원

다른 협력업체 직원 B씨는 “담을 넘어 도망가려는 히스패닉 노동자에게는 위협 사격도 있었다고 한다”며 “영주권, 시민권을 가진 근로자만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ICE 등이 오전 9시 정도에 도착했는데 나는 오후 1시 30분이 돼서야 공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특정 하청업체 직원들만 그날 유독 출근을 안 한 경우가 많았다”며 “히스패닉이 많은 업체들 사이에서는 ICE 단속 소문이 돌았던 것 같다”고 전했다.

전날에도 면회를 위해 시설 내부를 둘러봤다는 또 다른 한국 직원 C씨는 “구금된 한국 직원들은 대부분 베이지색 수용복을 입고 있었다. 비교적 가벼운 혐의를 받는 이들이 입는 옷이라고 들어서 다행”이라며 “여성들이 구금된 스튜어트 구금시설에는 임신 초기 여성 직원도 있어 걱정이 크다”고 전했다. 스튜어트 구금시설은 포크스턴 구금시설에서 차로 3시30분 정도 떨어진 조지아주 서부 내륙 지역에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단속이 과도하다는 불만도 터져나왔다. 동료를 면회 온 한 협력업체 관계자 D씨는 “여기서 하는 노동이 냉장고, 세탁기 설치하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다. 매우 민감한 전자 장비를 설치하고 시운전을 하는 역할”이라며 “장비를 설치하는 것은 생산 활동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자격으로 한국으로 귀국하는 지가 중요하다. 추방돼서 가는 것이면 대체 인력을 구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ICE가 발부받은 수색영장이 12일까지 유효해 그때까지는 대부분 직원이 공장으로 출근하기 어렵다는 게 현지 직원들의 전언이다.

이날 면회는 12시 30분쯤 일방적으로 종료됐다. 구금 시설 직원은 대기 중인 한국 직원들에게 면회는 끝났다고 소리쳤다. 오전 8시부터 일찌감치 줄을 섰던 대다수 한국 직원들도 동료를 만나지 못하고 허탈하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포크스턴(조지아주)=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