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어떤 이웃

입력 2025-09-07 18:28

그녀는 오랜 도시 생활에 지쳐있었다. 그건 그녀의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가기 위해 그동안 모은 돈으로 일부 두릅나무가 심겨있는 땅을 샀다. 인근 땅에 작은 집을 지어 이사했고, 농사지을 땅에 촘촘히 두릅나무를 더 심었다. 그녀의 땅에서는 대략 4월 중순부터 5월 초순 사이에 두릅나무 순이 나온다. 이 시기에만 두릅 수확이 가능한데, 정상적으로 수확해서 판매하면 1년에 대략 4000만원 정도의 수입이 예상되었다. 아이들을 다 키워놓은 상태라 그녀 부부가 생활하기에는 부족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 부부가 열심히 두릅나무를 심고 가꾸는 과정에서 지근거리에서 두릅나무 농사를 짓고 있던 70대 노인과 사소한 갈등이 생겼다. 노인은 조용하던 동네가 갑자기 그녀 부부로 인하여 분주해진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남편에게 불만을 표시했다. 그녀의 남편은 처음에는 사과하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지만, 노인의 요구가 갈수록 거세지면서 서로 큰 소리가 오가기도 했다.

4월 어느 날, 첫 두릅 수확을 앞두고 기대감에 들떠있던 그녀 부부는 작은 트럭을 타고 두릅 수확을 위해 길을 나섰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차를 멈춰야 했다. 누군가 그녀의 땅으로 가는 유일한 길에 통나무를 잔뜩 놓아서 차가 다닐 수 없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녀 부부는 두릅 수확 시기를 잘 알고 있는 노인의 짓이라고 생각했다. 화가 치밀어 오른 그녀의 남편이 노인을 찾아가서 따졌다. 서로 험한 말도 주고받았다.

다음날에도 통나무는 그대로였다. 그녀의 남편이 다시 노인을 찾아가서 통나무를 치우라고 소리쳤다. 그 과정에서 서로 멱살잡이도 하고 험한 욕도 주고받았다. 그녀의 남편이 통나무를 당장 치우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노인도 지지 않고 맞고소하겠다고 맞섰다. 그리고 실제로 맞고소가 이뤄졌다. 경찰은 쌍방의 고소 혐의 중 노인의 일반교통방해혐의만 검찰에 송치하고 나머지 혐의는 모두 불송치결정을 내렸다.

맞고소로 인하여 서로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사이 두릅 수확이 가능한 5월이 지나가 버렸다. 노인은 정상적으로 두릅을 수확하여 팔았으나, 그녀 부부는 노인이 치우지 않은 통나무 때문에 수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 부부는 노인을 상대로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노인이 통나무로 길을 막아서 두릅을 수확하지 못했으니 수확하지 못한 만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인도 답변했다. 내 땅에 통나무를 놓은 것이 무슨 문제냐고.

이 사건을 담당한 판사는 조정에 회부했다. 조정기일에 조정위원은 양 당사자의 이런저런 불만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리고 ‘언제까지 서로 싸우면서 세월을 낭비할 거냐, 싸움에서 이긴들 마음이 편할 것 같으냐, 앞으로도 같은 동네에서 살 텐데 서로 어떻게 볼 거냐, 이제라도 화해하는 게 어떠냐’고 쓴소리를 했다. 노인보다 나이가 열 살 정도 적은 그녀 남편이 먼저 양보하자 노인도 호응했다. 노인이 즉시 통나무를 치우고 손해배상금으로 약간의 돈을 지급하며, 향후 서로에게 비난이나 비판을 하지 않기로 하는 내용으로 조정이 성립됐다. 조정을 마치고 나온 두 사람 모두 후련한 표정을 숨기며 서둘러 법원을 떠났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