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 하수처리장·잊혀진 교실·낡은 창고가 생명을 얻다…경기도 재탄생 여행지

입력 2025-09-05 22:23

방치되던 하수처리장은 문화예술의 무대로, 잊혀진 교실은 다시 사람들을 맞이하고, 낡은 창고는 여유를 찾는 쉼터로 변신하는 등 경기도 곳곳에는 과거의 기억을 품고 새로운 생명을 얻은 장소들이 있다.

낡았지만 새로움이 있는 곳,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에서 우리는 오래된 것들이 주는 따뜻한 위로와 미래로 이어지는 희망을 동시에 발견해보면 어떨까.

#방치된 하수처리장이 시민의 정원으로 ‘성남 물빛정원’

한때는 하수처리장이었지만 운영이 중단된 채 30년간이나 흉물처럼 남아 있었던 공간이 올해 휴식과 예술이 어우러진 정원으로 재탄생했다.

바로 성남물빛정원.

이 곳이 자리한 곳은 탄천과 동막천이 만나는 지점이라 ‘두물길’이라고도 부른다. 몇 개의 공간으로 분리되는데 그중에는 ‘담빛쉼터’ ‘꽃대궐정원’ ‘소풍마당’ 등이 있다.

서쪽 동막천 출입구에 자리한 담빛쉼터는 달항아리를 닮은 둥근 조형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곳이고, 정원 중앙에 자리한 꽃대궐마당은 계절마다 다양한 꽃들이 피어나는 곳이다. 소풍마당은 파라솔과 벤치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연인이나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이 많이 찾는다.

특히 곳곳에 남아 있는 옛 하수처리장 건물들이 현대적인 정원 풍경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느끼게 한다.

이달부터 뮤직홀과 카페도 문을 열었다

#폐교에서 피어나는 문화의 향기 ‘평택 웃다리문화촌’

평택 서탄면 들녘 사이를 달리다 보면 소박한 금각리 마을을 만나게 된다. 마을회관 앞에는 버스가 회차하는 작은 공터가 있고 맞은편에는 폐교된 금각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곳이 문화의 숨결이 머무는 공간인 웃다리문화촌이다.

‘오줌싸개’ 동상이나 ‘책 읽는 소녀’ 석고상 등이 있었을 법한 교내의 화단에는 아기자기한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학생들이 뛰어놀던 운동장은 초록색 잔디가 깔려 있고 주변은 키 높은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둘러서 있어 마치 울타리처럼 아늑하다.

1945년 개교한 금각초교는 2000년 폐교되었고 이후 6년여 방치되다가 평택 시민의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

교실이 전시장으로, 별관이 세미나실과 쉼터로 변해 시민들을 맞이한다. 상설전시관에는 금각초교의 옛 모습과 금각리 마을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기획 전시실은 사진·회화·설치미술 등 다양한 작가들의 전시장으로 활용된다.

웃다리문화촌은 낡은 흔적 위에 새 숨결을 불어 넣는 예술인과 여행자들이 어울리는 열린 마당이다.

#물의 기억을 품은 복합문화공간 ‘시흥 맑은물상상누리’

한때 생활하수를 처리하던 산업 공간이 이제는 문화와 예술을 품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시흥의 맑은물상상누리는 과거의 거대한 구조물이 상상력의 무대로 바뀐 곳이다.

본관에 해당하는 창의센터는 하수처리 과정을 재미있게 설명해 놓은 전시장이 있어 어린 자녀를 동반한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창의센터를 제외하면 나머지 공간은 모두 재생 공간이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거대한 고깔 모양의 비전타워로, 하수처리시설인 소화조와 관제탑이 하나로 연결된 곳이다. 내부는 옛 시설 일부가 그대로 노출하여 마치 스릴러영화 세트장을 방불케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실제 관제탑을 그대로 활용한 전망대가 있는데, 둥글둥글한 시설물의 지붕들이 마치 꽃처럼 펼쳐진 풍경을 볼 수 있다.

하수처리 과정의 가스 저장소는 미디어아트 전시관으로 변신해 시흥의 명소들을 보여준다. 딱딱한 의자가 아니라 푹신한 쿠션이 깔린 바닥에 누워서 관람할 수 있어 더욱 색다르다.

맑은물상상누리는 버려진 공간이 어떻게 창의적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사례이다.

#채석장을 활용한 자연 친화 공원 ‘안양 병목안시민공원’

수리산 북쪽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안양 병목안시민공원은 계곡과 숲이 어우러져 계절마다 조금씩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봄에는 벚꽃이 화려하고, 여름에는 푸른 숲이 울창하며, 가을에는 단풍이 흩날리고, 겨울에는 하얀 눈을 이불처럼 덮는다.

공원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황토가 깔린 맨발 산책로는 주민들에게 최고의 인기 장소다. 공원의 계단을 오르면 넓은 잔디마당이 펼쳐지고 그 맞은편에는 시선을 압도하는 인공폭포가 있다.

병목안시민공원은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철도용 자갈을 채취하던 채석장이었고 인공폭포는 채석장의 흔적이다. 지금도 공원 한쪽에는 당시에 사용하던 석재 운반용 객차가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며 전시되어 있다.

병목안시민공원은 과거의 채석장에서 자연과 어우러져 산책, 휴식, 캠핑까지 즐길 수 있는 팔방미인 공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주민들이 운영하는 마을 카페 ‘양주 봉암창고 카페’

양주시 봉암리 일대는 예부터 바위들이 많았고 그 중에 봉황을 닮은 바위가 있어, ‘봉암(鳳岩)’이라는 지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직선거리 500여 미터의 아담한 마을 북쪽 끝, 낡은 외벽의 창고 건물이 하나 있는데, 바로 ‘봉암창고 카페’다.

비료를 보관하던 과거의 농협 창고를 개조한 곳으로, 정중앙의 파란 철문으로 들어서면 창고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만큼 세련된 카페가 주민과 여행자를 맞이하는 공간이 됐다.

벽면에 붙은 봉암마을의 사진들을 보다보면 단순한 카페가 아닌 마을여행을 하고있는 기분이 든다. 전면 폴딩도어 너머로는 뒷마당이 이어지는데 봄·가을에는 이곳의 벤치에 실내보다 손님이 더 많이 몰린다.

카페 한쪽 벽에는 봉암새마을부녀회, 은현면 의용소방대, 봉암리사무소 등 마을의 오래된 나무 간판들이 비스듬히 세워져 있어, 창고 카페의 정취를 더한다.

이 카페는 마을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꾸려 직접 운영, 버려진 창고가 공동체의 힘으로 되살아난 쉼터다.

#창고를 리모델링한 문화 쉼터 ‘고양 일산문화예술창작소’

도시의 바쁜 하루 속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휴식하고 싶을 때 찾기 좋은 곳, 일산문화예술창작소.

베이지색 페인트 외벽과 익숙한 농협 마크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곳이 한때 농협 창고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창작소는 1층의 전시 공간과 공유 오피스, 지하 1층의 다목적실 등 크게 세 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이 중 주민과 여행자들이 이용하는 공간은 전시 공간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에 ‘일산 옛 사진전’ 안내판과 사진들이 걸려있다. 구멍가게, 약국, 사진관의 옛 거리 모습과 포장되지 않은 도로 풍경은 누군가에겐 과거의 조각으로, 누군가에겐 향수로 다가온다.

전시 공간은 대관 형식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주로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활용한다. 전시가 없을 때는 주민들이 자유롭게 쉬어갈 수 있는 쉼터로 개방된다.

오래된 건물과 사람과 예술이 만나는 곳. 일산문화예술창작소는 도시 속에서 잠시 숨 고르기를 할 수 있는 고요한 쉼터이자, 지역의 문화와 예술이 호흡하는 열린 공간이다.

수원=강희청 기자 kangh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