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자 584명 개인정보 재판증거로 제출한 동대표…대법 “정당행위”

입력 2025-09-05 10:50 수정 2025-09-05 10:56
대법원 청사. 뉴시스

타인의 개인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더라도 방어권 행사를 위한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고 사생활 침해 정도가 크지 않다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대전의 A아파트 동대표 회장 B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아파트의 일부 입주자들은 지난 2020년 아파트 관리비와 운영 문제 등을 놓고 B씨가 참여하는 입주자대표회의와 갈등을 빛었다. A아파트 입주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뒤, 아파트의 총 940세대 중 과반수가 넘는 606세대가 입주자대표회의 해산에 서면동의를 했다며 법원에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및 동대표의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B씨 등은 무효인 서명동의나 철회 세대 수를 제외하면 동의가 과반수에 미치지 않는다며 맞섰다.

B씨는 그해 6월 법원이 세대주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청하자, 입주자들의 동의 없이 아파트 관리소장 C씨로부터 입주자카드 584장을 받아 제출했다. 입주자카드에는 세대주의 이름, 생년월일, 직업, 차량번호, 가족 사항, 세대원 생년월일, 전화번호 및 주소 등 정보가 담겨있었다. 검찰은 B씨가 개인정보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기소했다.

1·2심은 B씨가 개인정보법을 위반했다고 봤다. 1심은 “B씨가 필요한 한도 내의 자료를 적법하게 증거로 제출할 수 있었음에도 가처분 사건과 별다른 관련이 없는 입주자의 개인정보까지 그대로 법원에 제출했다”며 벌금 70만원을 선고했으며 2심은 B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재판 과정에서 소송상 필요한 주장의 증명이나 범죄 혐의에 대해 방어권 행사를 위해 개인정보가 포함된 소송서류나 증거를 법원에 제출하는 경우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에 해당해 형법 제20조(정당행위)에 따라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어 개인정보 제출 경위와 목적, 제출 상대방,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을 제출했는지 여부 등을 고려했을 때 B씨의 행위는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가처분 사건의) 재판부는 B씨 등에게 2주일 이내에 자료의 제출을 명했는데, B씨가 그 기간 내에 입주자들로부터 개인정보 제공에 대한 개별적인 동의를 받기는 사실상 어려워 보이고, 입주자카드 이외에 다른 자료가 있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입주자카드의 개인정보가 세대주나 세대원의 특정에 필요한 정보에 불과하고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자가 가처분 사건 재판부라는 점을 보면, 해당 주민들에게 사회통념상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피해가 발생하였다고 보기도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윤준식 기자 semip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