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가 초저출생·초고령화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 지역사회의 ‘돌봄 허브’로 거듭나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지역 개교회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 거점이 돼 정부의 파트너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돌봄 정책이 노인이 요양시설을 가지 않더라도 자신의 거주지에서 모든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바뀌면서다.
이기일 전 보건복지부 차관이 4일 서울 영등포구 CCMM빌딩 12층 컨벤션홀에서 열린 국민미션포럼 ‘돌봄, 세상과 교회를 잇다’ 기조강연에서 “정부 돌봄정책의 핵심은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라며 “전국 모든 지역사회에 자리한 교회는 이를 실현할 가장 이상적인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에이징 인 플레이스는 어르신들이 몸이 불편해져도 정든 집과 이웃을 떠나 낯선 요양시설로 가는 대신, 살던 곳에 계속 머물면서 필요한 돌봄 서비스를 ‘집으로 배달’받는 새로운 정책 방향이다.
이 전 차관은 “1978년 서울 오류국민학교는 신입생이 1540명이었다. 올해 광주 중앙초등학교의 신입생은 한명이다. 어린이집은 매년 2000여곳씩 문을 닫고 있다”며 인구 위기의 심각성을 알렸다. 그는 이러한 현상이 사회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부양 구조의 붕괴’라고 진단했다. 세금을 내고 경제를 떠받칠 청년층은 사라지는 반면, 연금과 의료 등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노년층은 폭발적으로 늘어나 ‘1명이 1명 이상을 부양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고독사 사망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독자 사망자가 2021년 3378명에서 2022년 3559명 2023년 3661명으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정부는 이 위기의 직접적인 해법으로 돌봄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보고 있다. 지금까지는 노인이 돌봄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가족들이 식사, 목욕, 간호 서비스를 받기 위해 각기 다른 기관에 일일이 연락해야 했다. 앞으로는 통합 재가 서비스를 통해 하나의 ‘원스톱(One-Stop)’ 기관에만 신청하면 모든 돌봄을 한 번에 제공받는 방식으로, 이용자의 편의를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는 것이다.
이 전 차관은 바로 이 통합 재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로 교회가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한 교회가 매일 아침 독거노인 문 앞에 우유를 배달하는데, 우유가 쌓여있으면 안부를 확인하는 작은 시스템이 고독사를 막고 있다”는 사례를 들며, 교회가 이미 지역사회의 신뢰받는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통합 재가 서비스의 거점으로 지역 교회가 이용되면, 이 교회에서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 팀이 꾸려져 각 가정으로 파견되고, 교회의 남는 공간은 어르신들의 주간보호센터나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되는 ‘우리 동네 돌봄 총괄 베이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전 차관은 “전국 어디에나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교회가 주일을 제외하고는 유휴 공간으로 남아있다”며 “지역을 섬기려는 마음이 결합된다면 교회는 정부 정책과 발맞춰 어르신들이 살던 곳에서 존엄한 노후를 보내도록 돕는 가장 효과적인 사회 안전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