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통령 지적한 중대재해 징벌배상, 왜 없을까

입력 2025-09-04 05:00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징벌배상을 하게 돼 있는데, 징벌배상을 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난 2일 국무회의 발언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제15조는 사업주 혹은 경영책임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중대재해를 발생시킨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배상 조항을 두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해당 조항이 기업과 중대재해 피해자간 ‘협상용’으로만 쓰이고 실제 관련 소송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4일 노동계에 따르면,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하면 기업과 유족이 합의하는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민사상 다툼의 영역이라 당사자끼리 합의하면 재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법조계 관계자는 “중대재해 기업을 자문하는 로펌이 사망 사건이 터졌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본사 직원을 피해자 상가에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으로서는 합의에 실패하면 사업주의 실형 여부가 달린 형사재판에서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중대재해 기업이 피해자와 손해배상금을 두고 다투는 상황을 두고 재판부가 ‘반성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합의의 결과로 피해자가 형사재판부에 제출하는 처벌불원서는 가해자의 형량을 낮추는 참작 사유가 된다.

피해자들도 소송의 법률적·경제적 부담을 고려해 합의를 택하는 게 일반적이다. 민사소송이 최종 결론에 이르려면 수년이 소요되고 피해자 측은 손해액 산정, 기업 측의 고의·중과실 입증 등 책임을 져야 한다. 통상 중대재해 피해자들은 합의금으로 사측으로부터 5억~10억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내포한 해석의 불확실성도 지적한다. 징벌배상 요건인 ‘고의 또는 중과실’의 법률적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노정환 법률사무소행복한동행 변호사는 “재판부가 고의나 중과실을 어떻게 해석할지 불분명하다 보니 피해자는 이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고 기업은 불확실성을 피하려 합의금을 주고 끝낸다”며 “그 결과 관련 판례가 쌓이지 않아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법 해석이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피해자 청구에 의존하는 민사상 배상과 달리, 정부가 직접 기업에 부과하는 행정적 제재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벌금 300만~500만원은 아무런 제재 효과가 없다”며 “중대재해 발생시 매출 몇배 수준의 과징금을 검토하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만큼 관련 대책 마련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통해 안전보건 조치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하고, 법 위반으로 다수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법인에 과징금을 물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과징금 산정 방식으로는 정액 방식과 매출액 일정 비율 방식을 동시에 논의하고 있다.

세종=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