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소안도 목회자들, ‘섬지기’로 자립의 길 연다

입력 2025-09-03 15:56
섬지기 협동조합이 지난 4월 전남 완도군 소안도 부상안디옥교회에서 협동조합 준비를 위한 모임을 진행했다. 섬지기 제공

완도에서 배를 타고 1시간을 가면 나오는 섬, 소안도. 이 섬에서 지난달 네 개의 교회가 힘을 모아 지속가능한 목회를 위한 구조를 세웠다.

구도교회(천현호 목사) 맹선은혜교회(조규필 목사) 부상안디옥교회(김용균 목사) 소안동부교회(장민영 목사)가 모여 만든 ‘섬지기 협동조합(섬지기·이사장 조규필 목사)’이다. “섬 목회자들이 어떻게 하면 안정적으로 사역을 이어갈 수 있을까”라는 젊은 목사의 오랜 고민이 결실을 맺은 결과였다.

이들은 미역 다시마 등 섬의 상품을 판매해 목회자들의 자립을 돕는 선순환 구조를 세워가고 있다.

섬지기 이름에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지기(知己)’, 자신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참된 친구라는 뜻과 낙도에 있는 교회를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의미한다.

섬지기의 시작은 소박했다. 멸치액젓을 만들어 교회 운영비를 마련하던 조규필(43) 목사에게 한 사모가 농담처럼 건넨 한마디가 계기가 됐다. “목사님! 나 목사님 작업장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좀 써줘.” 조 목사는 일정 수입원이 없는 많은 농어촌 목회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대안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김용균(왼쪽) 부상안디옥교회 목사와 천현호 구도교회 목사가 전남 소안도 한 작업장에서 제품을 포장하고 있다. 섬지기 제공

3일 조 목사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농어촌 교회는 고령화, 저출산 문제로 인구 감소가 심하다”며 “그럼에도 교회는 세워져야 하고 목회자와 그들의 생계유지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농어촌 교회 목회자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재정이다. 지난 3월 목회데이터연구소(소장 지용근)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농어촌 목회자 중 사례비만으로 생활이 가능한 목회자는 20%로 다섯 명 중 한 명 꼴이다. 섬지기는 이런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과소평가된 섬의 특산물을 발굴하고 가동해 도시교회와 소비자에게 공급하면서 새로운 수익 구조를 만들었다.

이를 위해 건어물 가공 공장을 다니고, 섬 주민들과 협력해 경쟁력 있는 상품을 찾았다.

섬지기 목적은 단순 생활비 마련이 아닌 선교적 자립이다. 이들은 본래의 목적을 지키기 위해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 번째로 이들은 수익 일부를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목회하고 있는 가정으로 흘려보내기로 했다. 이를 위한 ‘더 낙도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더 낙도로는 매월 1~2회 마트와 식당이 없는 작은 섬에서 목회하는 이들에게 전국의 맛집 음식이나 특별한 선물 등을 보내는 사역이다.

섬지기 협동조합 상자. 섬지기 제공

또한 이들은 본업인 목회에 집중하기 위해 택배 작업은 일주일에 2회로 제한을 뒀다. 통장은 모든 협동조합 구성원이 볼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하고 관리한다. 업무의 분량과 이익은 균등하게 분배하고 일정 금액 이상 받지 않는 것 역시 이들이 물질에 대한 욕심을 경계하기 위해 세운 규칙이다.

조 목사는 “농어촌 교회는 한국교회의 모판”이라며 “시골에서 신앙으로 자란 청년들이 도시로 가서 한국교회를 성장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농어촌교회 목회자들이 교회를 살리기 위한 선교적 목적을 갖고 연합해 건강한 자립의 구조를 만든다면 한국교회의 근간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