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로 복원된 유관순은 환히 웃었고, 윤동주는 단정한 교복 차림으로 서 있었다. 2일 충남 천안 백석대(총장 송기신)에서 열린 광복 80주년 기획전 개막식 현장에서다.
사진 속 두 사람은 어둡고 비운에 젖은 얼굴이 아니라 전시 이름 그대로 불꽃 같은 소녀, 별빛 같은 청년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개막식에 앞서 전시관을 돌아보던 나태주(80) 시인은 이 사진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정말 마음에 든다”며 조용히 셔터를 눌렀다.
나 시인은 이날 개막식에서 헌시 ‘윤동주’를 낭독했다.
“우리들 마음속에 더는 나이를 먹지 않는 한 청년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들 영혼 속에 더는 변하지 않는 한 권의 시집이 숨 쉬고 있습니다. …이제금 우리들 마음의 하늘에 그 시인은 지지 않는 빛나는 별이 되었습니다.”
국민일보와 만난 나 시인은 윤동주에 대한 빚진 마음을 토로했다.
“우리는 윤동주 선생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우리 대신 죽고 우리 대신 고초를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늘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분에게서는 예수의 냄새가 납니다. 우리 대신 죽었다는 점에서 십자가를 진 예수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윤동주의 시적 세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동주 선생은 기독교 정신뿐 아니라 유교적 전통까지 품은 분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구절은 단순한 신앙의 고백이 아니라 한국인의 오래된 철학과 윤리를 아우른 말입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더 깊습니다.”
자신의 시 세계와의 연결 지점도 짚었다.
“윤동주는 스무 살 무렵에 이미 별을 노래하는 천재적 문장을 남겼습니다. 저는 훨씬 늦게 시를 쓴 둔재입니다. 그래도 작은 것에 대한 사랑, 먼 것에 대한 그리움, 자기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울림에 귀 기울이는 태도는 윤동주에게서 배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바라보아야 비로소 드러나는 사랑스러움. ‘풀꽃’의 눈길은 별을 올려다보던 윤동주의 눈길과 맞닿아 있습니다.”
청년 세대를 향한 당부도 전했다.
“절대로 한국은 ‘헬조선’이 아닙니다. 이 나라는 이미 눈부시게 발전한 나라입니다. 둘레를 더 살피고 조금 더 천천히 걸어가면 삶의 좋은 면이 보입니다. 삶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저절로 굴러가는 ‘사라지는 삶’, 계단을 오르는 ‘살아가는 삶’, 짐을 들고 올라가는 ‘살아내는 삶’. 옛 어른들이 살아내는 삶을 살았기에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삶을 누리는 겁니다. 청년들도 자신을 믿고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신달자 시인은 유관순의 삶을 조명했다. 그는 “유관순은 저항을 몸으로 뚫고 나간 ‘살아낸 사람’이었다”며 “그 불굴의 힘은 종교에서 비롯됐다. 윤동주가 시로 시대를 증언했다면 유관순은 몸으로 역사를 막아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개막식은 기도로 시작됐다. 강인한 부총장은 “광복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송기신 총장은 “유관순의 불꽃은 국민 가슴속에서 다시 타오르고 윤동주의 별빛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책임의 빛이 된다”고 했다. 김석필 천안시장 권한대행, 김수복 한국시인협회장도 축사를 전했다.
전시는 다음 달 15일까지 백석대 창조관 하은기획전시관에서 열린다. 유관순 열사의 뜨개 모자와 윤동주 시집 초간본 같은 희귀 자료와 함께 원로 시인들의 헌시가 전시된다. 관람객은 윤동주 시 필사, 뜨개 모자 만들기 등 체험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다.
문현미 산사현대시100년관 관장은 “윤동주 유관순 두 분의 숭고한 희생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다”며 “비운의 얼굴만 떠올리기보다 환한 미소로 되살려 희망찬 미래로 나아가자는 의미에서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천안=글·사진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