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가 경쟁력”…33년 대구대 역사와 한 지식인의 실천적 기록

입력 2025-09-02 14:14 수정 2025-09-03 01:15
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의 저서 ‘대학 민주화와 학생 행복’ 도서출판 한티재 제공


1988년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한 뒤 2021년까지 33년 3개월간 대학과 운명을 함께한 홍덕률 전 총장. 그는 해직과 복직, 두 차례 직선총장 당선, 그리고 학생들이 직접 열어 준 취임식까지, 한국 대학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경험을 고스란히 겪어 냈다. 그 치열한 발자취를 기록한 책, ‘대학 민주화와 학생 행복’이 출간됐다.

저자는 “대구대학교의 33년 역사가 ‘도전과 시련’이고 ‘상처와 보람’이었듯이 대구대학교와 함께한 나의 33년 삶 또한 정확하게 그랬다. 내가 주목한 것은 그 역사에는 오늘의 우리나라 사립대학들에 주는 특별한 교훈이 깃들어 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또 “33년 3개월 동안 한없이 보람 있던 시간들, 환호했던 순간들은 물론 하염없이 한숨짓던 날들, 분노했던 일들, 심지어 죽음의 유혹과 씨름했던 밤들의 기억까지 가감 없이 담아내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총장 장기 부재와 재단의 독선과 비리, 교수와 학생들의 끈질긴 저항, 교육부의 개입과 임시이사 체제, 그리고 재단 정상화에 이르기까지 대구대학교의 굴곡진 역사를 담았다. 그러나 저자의 시선은 단순히 사건의 기록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대학이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민주주의와 경쟁력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치열하게 묻는다.

◆‘학생이 행복한 대학’을 향한 혁신=총장으로서 그는 “대학을 대학답게,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굵직한 개혁을 이끌었다. 정부 재정지원 사업 유치, 산학협력 강화, 특수교육과 사회복지 분야의 확장, 친환경 녹색 캠퍼스 조성 등은 그 구체적 성과였다.

무엇보다도 “학생이 행복한 대학”이라는 새로운 대학 브랜드를 내세우며 학생 중심 대학 경영이라는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이는 당시 대학 사회에서는 낯설었지만, 그 후 다른 대학들과 지자체에 유사한 슬로건이 유행할 정도로 주목받았으며 오늘날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대학들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한국 대학들은 지금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생존 경쟁 속에서 민주주의는 뒷전으로 밀리고, 교권과 학습권이 위협받으며, 연구 윤리와 교육 윤리마저 흔들리고 있다. 바로 이때, 대구대학교가 보여 준 “민주주의가 경쟁력”이라는 경험은 다시 새겨야 할 교훈이다.

◆‘총체적 대학혁신’을 향한 제언=저자는 한 대학 차원의 교육과정과 교육방법의 혁신만으로는 한국 대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오늘날 대학이 직면한 총체적 위기는 중장기 안목의, 거시 수준의, 국가 차원의 총체적 대학혁신을 요구한다.

국립대와 사립대, 연구 중심 대학과 교육 중심 대학,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의 역할 조정, 사립대학 지배구조의 선진화, 대학 평가 체제 개혁과 부실 대학 퇴출,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투자 확대까지 포괄하는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대학혁신 정책은 초중등 교육과 평생교육, 더 나아가 국가균형발전과 사회 대개혁의 청사진 속에서 추진돼야 한다. ‘대학 민주화와 학생 행복’은 바로 그 큰 설계도 속에서 대학의 자리를 묻고, 오늘의 교육 개혁을 향한 방향을 제시한다.

‘대학 민주화와 학생 행복’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다. 한 대학의 민주화 투쟁사이자, 위기의 시대에 대학이 나아가야 할 길을 함께 제시하는 실천적 지식인의 보고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한 대학의 기록을 넘어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교육과 민주주의의 과제를 함께 성찰하게 될 것이다.

‘대학 민주화와 학생 행복’을 펴낸 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 대구대 제공


◆저자 홍덕률은 인천 제물포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공부했다. 1988년 3월부터 2021년 6월까지 33년 3개월을 대구대학교에서 교수와 총장으로 일했다.

평교수 시절, 대학 민주화에 헌신하다 해직되기도 했다. 두 차례의 직선총장 재임 중에는 교수, 학생, 직원과 함께 ‘민주적 재단 정상화’를 이끌었다. 시련과 상처도 컸지만, 대학 구성원의 지지로 극복할 수 있었다.

‘학생 중심 대학 경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과 ‘학생이 행복한 대학’으로의 혁신을 위해 노력했다. 2014년 9월 ‘학생이 열어 준 총장 취임식’은 그 결과이자 대학사에 유례가 없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대학의 ‘민주주의와 경쟁력’을 함께 성취한 것을 값진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학 밖에서는 진보적 지식인, 칼럼니스트로 지역과 국가의 현안에 적극 발언해 왔다. 2021년 6월부터 3년간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을 역임하고 은퇴한 뒤 지금은 여행과 강연과 글쓰기로 새로운 삶을 즐기고 있다.

대구=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