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불러만 봐도 눈물 나요/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신 아버지/온종일 물어봐도 감당할 수 없는 그 사랑.”
1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역 12번 출구 인근 새꿈어린이공원 옆 일어나빛을발하라교회. 찬양 소리를 따라 작은 상가 교회에 들어서니 본당에 모인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 100여 명이 한목소리로 찬양을 부르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아침 6시부터 와서 세 시간 넘게 예배에 참여했다. 그 한가운데서 따뜻한 눈빛으로 성도들을 맞이하는 이가 있다.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마다 노숙인들에게 짜장면을 무료로 나누며 25년째 그들을 품어온 박반순(70) 목사다.
최근 박 목사는 짜장면 기계에 손가락이 끼여 꿰매는 사고를 당했지만 “이 사역을 이어갈 수 있음이 감사하다”고 말한다. 아파서 오지 못한 이에게는 음식을 따로 챙겨주고 다리가 불편한 이에게는 손을 얹고 기도해준다. 그래서 노숙인들은 그를 ‘노숙인 엄마’ ‘쪽방촌 엄마’라 부른다.
박 목사의 사역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절에 시작됐다. 1997년 남편 사업이 무너진 뒤 우연히 만난 유수영 목사와 함께 영등포역과 서울역을 오가며 노숙인들과 지냈고 민족사랑교회 개척에도 동참했다. 7년 전 유 목사가 간암으로 별세한 후 잠시 안식기를 가졌지만 2년 전 지금의 교회를 세워 다시 짜장면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짜장면 사역은 이날도 교회 식당에서 땀을 흘리며 면을 뽑고 있는 장우만(63) 집사와 함께 시작된 것이다. 과거 35년 중화요리 주방장 경력이 있는 그는 IMF 시절 사업이 무너져 거리로 나앉았다. 민족사랑교회 지하에서 30여명의 노숙인과 함께 지내며 신앙을 붙잡았고 명절마다 100여명과 기도원에 갔던 경험이 삶의 전환점이 됐다.
수타 기술자였던 그는 25년 전 박 목사에게 ‘짜장면 사역’을 제안했고 지금까지 든든한 손이 됐다. ‘짜장면 집사’로 불리는 장 집사는 허리 치료를 받는 중에도 새벽 6시부터 나와 면을 뽑고 소스를 준비한다. 그는 “누군가를 섬길 수 있어 감사하다”며 “나도 도움을 받았는데 이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쁘냐. 이곳에선 서로 조금씩 부족해도 이해하고 배려하기에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날 예배 설교는 김준성 카이스트교회 목사가 맡았다. 매주 짜장면 나눔 사역에 동참하는 김 목사는 교회로 오는 길에 본 종로역 복권 가게 줄을 언급하며 말했다.
“우리 목표는 천국 복권 당첨입니다. 짜장면만 먹고 천국 복권에서 떨어지면 안 됩니다.” 유머 섞인 설교에 노숙인들은 웃었다. 곧 이어 “십자가가 마음에 새겨지면 회개가 일어나고 그 회개가 구원으로 이어진다”는 메시지에는 진지한 “아멘”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30분간의 설교 후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되자 박 목사와 성도들이 바삐 움직였다. “목사님, 정말 맛있어요. 잘 먹었습니다.” 짜장면을 받은 성도들의 감사 인사가 이어졌다. 점심시간을 쪼개 빵을 가져와 나누는 성도도 있었다. 박 목사는 봉사자들을 향해 “하늘에서 해처럼 빛날 사람들”이라고 격려했다.
그러나 교회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노숙인 출신의 성도 대부분은 건강이 좋지 않고 운영비와 사역비도 늘 빠듯하다. 모든 재정은 자비량으로 충당된다. 박 목사의 남편 안택인(78) 장로는 오후 7시부터 오전 7시까지 야간 경비를 서며 번 돈을 교회 월세·공과금·재료비에 쏟는다. 다른 봉사자들도 모두 자비량으로 섬긴다.
박 목사는 3개월 전 짜장면 기계에 손가락이 말려 들어가 뼈가 드러날 정도로 찢어지는 큰 사고를 당했다. 그는 상처 자국이 남은 손가락을 보여주며 “병원에서는 신경이 다쳤다고 한다. 아직 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고 팔도 아플 때가 있지만 이 사역을 계속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현재 교회에 출석하는 14명의 성도는 모두 노숙인 출신이다. 이 중 6명은 민족사랑교회 시절부터 함께해온 이들이다.
박 목사는 “노숙인들 대부분이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가 끊기거나 가정과 단절된 이들”이라며 “정신적 아픔이 큰 이들을 어린아이처럼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그는 ‘엄마 목사’라고 불린다. 실제 예배당에 와서 “우리 엄마가 나 10살 때 도망갔어. 엄마가 밥 줘”라며 박 목사를 찾는 이도 있다.
박 목사는 교회 성도들을 ‘식구’라 부른다.
“14명 성도 모두 가정과 직장을 잃고 노숙 생활을 했던 이들입니다. 사람은 안 변한다고 하지만 주 안에서는 변합니다. 술을 끊고 직장을 얻고 월급을 타면 몇만원이라도 헌금하는 성도들을 볼 때 보람이 큽니다.”
글·사진=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