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날개 단 KF-21 급유기는 ‘0원’…단거리 택시 전락하나

입력 2025-09-01 08:47 수정 2025-09-01 09:20
KC-330 상공에서 공중급유기가 F-15K 전투기에 급유를 하고 있다. 공군 제공

내년도 국방 예산에서 공중급유기 구매비가 제외되면서 1조2000억원 규모의 공중급유기 2차 사업이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1일 확인됐다. 정부는 초음속 전투기 KF-21로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추진하고 있지만, 작전 반경을 받쳐줄 급유기가 없으면 자동차는 늘어났는데 주유소가 없는 꼴이어서 실제 가용 전력은 그대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KF-21,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등 굵직한 사업에 집중하면서 공중급유기가 비전투 자산으로 분류돼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이 사업 무산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공군은 내년도 예산에 공중급유기 구매비를 반영하기 위해 기획재정부와 막판 협상을 이어갔지만, 이재명정부의 첫 예산안에서 제외됐다. 정부가 발표한 20조1744억원 규모의 방위력 개선비에선 KF-21 개발·양산,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연구 등 굵직한 사업 예산이 대폭 확대됐지만, 공중급유기 도입은 반영되지 않았다. 공군은 기존 계획을 축소해 2026~2027년 공중급유기 2대를 우선 계약하고 2029년 전력화한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이마저도 틀어지게 됐다. 공군 관계자는 “올해가 4년 전 견적가인 1조2000억원으로 입찰을 넣어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내년 예산에서 빠지면서 공중급유기 2차 사업은 사실상 좌초됐다”고 말했다.

군은 현재 2015~2019년 1차 사업을 통해 도입된 공중급유기인 KC-330 시그너스 4대를 운영 중이다. 공군은 주력 전투기인 KF-21, F-15K 등이 확대되는 상황을 반영해 최소 8대 이상의 공중급유기가 필요하다고 판단, 2022년부터 1조2000억원 규모의 공중급유기 2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 국방 예산에서 공군 전력 강화를 전면에 앞세웠다. KF-21 개발·양산을 위한 예산은 기존 1조3000억원에서 2조4000억원으로 상승했다.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연구에는 예산 636억원이 배정됐다. 이를 두고 군 내에서는 “화려하게 부각시킨 예산에 정작 진짜 필요한 예산은 빠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KF-21을 확보해도 공중급유기가 없으면 한반도 반경 500~600㎞ 안에서 단거리 주행만 할 수 있어 동·남중국해, 태평양 작전은 불가능하다. 급유기가 부족하면 최신형 전투기를 아무리 늘려도 실제 전력 발휘는 제한적이라는 얘기다.

공군 KF-16 전투기가 상공에서 KC-330 공중급유기로부터 급유를 받고 있다. 공군 제공

현재 공군이 운영 중인 전투기는 KF-16 130대, F-15K 59대에 추가 도입될 F-21, FA-50 등을 포함하면 약 400대에 달한다. 급유기 1대가 100대 이상 전투기를 주유해야 하는 비정상적 구조지만, 이마저도 과부하 영향으로 유지·보수 상황에 놓이면 전부 가용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공군과 방위사업청은 “급유기 없는 KF-21은 무용지물로 이번이 도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메시지를 앞세워 국회에 증액을 요청하기로 했다. 공중급유기 유력 후보군인 미국 보잉사의 ‘KC-46A 페가수스’를 구입하면 미 정부에서 주장하는 한·미 무역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고도 호소할 방침이다. 공군 관계자는 “K-21은 장거리 작전과 정밀 타격이 강점인데 급유기가 없으면 사실상 단거리 전투기가 된다”며 “모양만 좋은 빈 껍데기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