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백혜선 “음악에 생명 부여하는 게 연주자의 사명”

입력 2025-09-01 05:00
피아니스트 백혜선. (c)영앤입섬 제공

“요즘 기량이 뛰어난 젊은 한국 피아니스트들이 많아요. ‘클래식계 아이돌’인 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미국 보스턴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최근 서울 종로구 종로아트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조성진, 임윤찬, 김세현 등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에 대한 소감을 피력했다. 백혜선은 다음 달 24일 예술의전당 공연을 시작으로 6회에 걸쳐 열리는 벨기에 국립오케스트라(지휘 안토니 헤르무스) 의 첫 내한 무대에 협연자로 나선다.

그는 “학교에서 나보다 잘 치는 학생들의 등장을 목격하게 된다. 이런 학생들은 성장도 정말 빠르다. 각자 자신을 롤모델이라고 할 만큼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나간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예전에는 음악에만 집중하면 됐지만, 지금은 음악만 해서는 안 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음악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는 점을 알려 주며 진로에 대해 넓게 생각하라고 조언한다”고 덧붙였다.

백혜선은 근래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입상한 뒤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롤모델’ 같은 선배다. 1991년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4위, 1994년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 공동 3위를 차지한 그는 1세대 콩쿠르 스타로 이름을 알렸다. 연주 활동과 함께 일찌감치 교편을 잡은 그는 서울대 음대 교수, 미국 클리블랜드 음악원 교수를 거쳐 현재는 뉴잉글랜드 음악원(NEC) 피아노학과 공동 학과장을 맡고 있다. 2021년 부소니 콩쿠르 2위 김도현, 2023년 윤이상 국제 음악 콩쿠르 2위 김송현, 올해 롱 티보 국제 콩쿠르 1위 김세현이 그의 제자다.

그는 “내가 설 무대가 제자들로 인해 없어질 수도 있지만, 세대가 교체되며 후세들이 이렇게 나오는 거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제자들의 성취는 자랑스럽지만, 연주가의 스승으로 비칠 때도 나는 연주자이고 싶다”고 웃었다. 이어 “연주가 있을 땐 학생을 가르치는 것을 미뤄두고 피아노 연습에 몰두한다. 이때 연주자로서 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연주는 내게 숨을 쉬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그가 이번에 협연하는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는 브뤼셀 보자르 극장의 상주 오케스트라이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협력 오케스트라다. 백혜선이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것은 1991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참가하고 나서 34년 만이다. 백혜선은 “콩쿠르 본선에서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면서 연주력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콩쿠르 본선 입상 이후 함께 순회연주를 다닐 기회가 많았었다. 오랜만에 다시 함께 연주하게 돼 고 설렌다”고 말했다.

백혜선은 이번 공연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연주한다. ‘황제’는 베토벤의 협주곡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7년 만에 이 곡을 무대에서 연주한다. 그는 “음악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게 연주자의 사명”이라면서 “연륜과 경험, 곡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을 통해 가슴을 울리는 연주를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