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 모아 세력을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의명분을 앞세워 좀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함으로써 마침내 권력을 획득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먼저 뜻이 같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 하는데, 어떤 사람이 모이느냐에 따라 그 정치 세력의 운명이 결정된다. 그 다음 대의명분을 세워 대중을 설득한 후 권력을 획득해 대의를 실현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 세력은 권력을 획득한 후 대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팽개치기 일쑤다. 그래서 ‘정치판’이라는 말이 나왔나 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정치판이라고 하는 곳은 술수와 야합, 음모와 배신이 판을 치는 곳이다. 이익을 함께하려는 자들은 옳지 않더라도 편을 들어주지만, 뜻을 함께하려는 자들은 옳아도 폄훼하고 비난하기 바쁜 곳이다. 현재 우리 정치판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주역’에서 ‘伏戎于莽 升其高陵 三歲不興(복융우망 승기고릉 삼세불흥, 풀숲에 병장기를 몰래 숨겨 놓고 높은 언덕에 올라 망을 보면 삼 년이 지나도 흥할 것이 없다)’이라고 했다. ‘치졸한 계략과 암수를 사용해 자신의 능력보다 높은 지위에 오르려 하고,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사사로운 이득을 취하려 하면 세 번의 기회에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정당당하지 못한 정치는 성공하지 못하니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판이 어디 정정당당해서 성공할 수 있는 곳인가. 오히려 대부분의 정정당당은 실패로 귀결되는 게 정치판의 가슴 아픈 현실일 것이다.
한편, 실제로는 음흉한 권력욕의 화신이 정정당당을 가장해 운 좋게 권력을 잡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 인조가 있다. 인조는 쿠데타를 통해 광해군을 몰아내고 어쩌다 왕이 되었다. 그는 왕이 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 자신을 옹립한 신하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왕다운 배짱도 없었고 그저 신하들 눈치보기에 급급했다. 왕이 무능하니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결국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맞았다.
병자호란은 그 기간이 불과 2개월에 불과했지만, 인조 자신과 백성들의 피해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인조는 삼전도에서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를 하며 치욕을 겪어야 했고, 죄 없는 수많은 백성은 죽거나 끌려갔다. 최근 우리는 현대판 인조를 경험했다. 무속에 기댄 권력욕으로 전 정권에 실망한 국민을 현혹하여 운 좋게 정권을 잡았던 그. 그러나 그는 제대로 신내림을 받지 못한 선무당에 불과했다. 어쩌면 정치판의 생리 때문에 이런 오욕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는 올바른 정치판에 대한 기대를 접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맹자가 ‘임금이 백성의 즐거움을 보고 즐거워하면 백성도 임금의 즐거움을 즐거워하고, 임금이 백성의 근심을 근심하면 백성도 임금의 근심을 근심합니다. 온 천하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하며, 온 천하 백성들과 함께 근심하고도 왕도정치를 하지 못하는 자는 없습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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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