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가뭄’ 강릉 저수율 15% 무너졌다

입력 2025-08-31 11:08 수정 2025-08-31 13:05
지난 30일 강원 강릉시 대관령샘터에서 시민이 물통에 식수를 받고 있다.

강원도 강원시가 전례 없는 최악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강릉 생활용수의 87%를 공급하는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물을 더 공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떨어졌다.

31일 한국농어촌공사 농촌용수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40분쯤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14.9%로 전날 15.3%에서 0.4%포인트 떨어졌다.

저수 공급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진 저수율 15% 선이 무너지면서 강릉시는 수도 계량기 75%를 잠그는 제한 급수를 본격적으로 시행한다.

시는 저수율이 25% 이하로 떨어진 지난 20일부터 아파트를 비롯해 5만3485가구의 계량기 50%를 잠금 하는 제한 급수로 절수 조치를 시행해 왔다.
지난 27일 강릉시 홍제정수장에서 동해, 삼척, 양양, 속초, 고성, 평창 등 영동지역 소방차 22대가 운반 급수를 통한 생활용수 지원에 나서고 있다.

저수지가 점점 메말라감에 따라 시는 전날부터 오봉저수지의 농업용수 공급도 중단했다. 이전까지는 ‘3일 공급·7일 제한’ 방식으로 농업용수를 공급했다. 원래대로라면 23∼29일 공급 제한 기간이 끝나고 30일부터 공급이 재개됐어야 하지만 저수율이 15% 가까이 떨어짐에 따라 농업용수를 공급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오봉저수지 외에도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가 10곳이 있다.

최악의 가뭄에도 강릉시민들은 앞장서 물 절약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 시민들은 빨래를 자제하고 물티슈로 화장실 청소를 하거나 심지어 변기 물까지 아껴가며 절수에 동참하고 있다. 일부 식당은 휴업을 선언하거나 점심 영업만 진행하고 있다.

농가도 직격탄을 맞았다. 이맘때쯤 수확이 한창이어야 할 안반데기 배추밭에는 가뭄 탓에 배춧속이 가운데서부터 녹아버리는 이른바 꿀통 배추가 급증, 출하를 포기한 농가가 수두룩하다. 옥수수, 고추, 깨 등 농사를 짓는 농경지도 바싹 말라 농작물이 전부 말라 죽었다. 농가는 가뭄으로 생계의 어려움마저 견뎌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지역 87%의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상수원 강릉 오봉저수지가 바짝 말라 있다.

정부는 전날 강릉에 재난 사태를 선포했다. 자연 재난으로는 처음이다. 오봉저수지를 둘러본 이재명 대통령은 장단기 대책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소방청은 이날 강릉시 급수 지원을 위해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했다. 전국에서 물탱크차 50대와 급배수지원차 1대 등 소방차량 71대가 31일 오전 9시 강릉 연곡면 강북공설운동장에 집결해 본격적인 급수 지원 활동에 들어갔다. 하루에 2500t이 급수된다.

주민들은 정부의 재난 선포에 시름을 덜게 됐다며 안도했다.

주민 전수윤(56)씨는 “최근 강릉시민들이 혹시 식수라도 중단될까 봐 가뭄으로 큰 시름을 겪었다”며 “이번 재난 선포로 당장 문제 해결이 되지 않겠지만 시민들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게 됐다”고 말했다.

이상무 강릉시소상공인연합회장은 “농업뿐만 아니라 요식업도 큰 타격을 받고 있었다”며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가뭄 피해에서 벗어나 지역 경제도 회복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지난 29일 강원 강릉시 강릉아레나 주차장에서 극심한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는 학교와 경로당, 유치원 등에 생수를 배부하고 있다.

심창보 강릉시농민회 회장은 “가뭄으로 농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피해가 크고 병충해까지 겹쳐 농민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이번 결정을 계기로 정부가 강릉지역 농업을 더 세심하게 보살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앞서 2005년 5월 양양 산불, 2007년 12월 충남 태안 기름유출 사고, 2019년 4월 강원 동해안 산불, 2022년 3월 경북 울진·삼척 산불 등에 재난 사태가 선포된 바 있다. 자연 재난으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강릉=홍성헌 기자 ad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