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 처서가 지났음에도 섭씨 40도를 육박하는 찜통 더위의 기세가 좀체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KLPGA투어는 7월 중순 2주간의 짧은 휴식기만 보내고 매주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무더위 속에서 라운드를 하게 되면 집중력이 떨어진데다 에너지 소모량 또한 그렇지 않은 날씨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 경기력에 악영향을 미치는 건 당연하다. 프로 선수들이라고 해서 예외일 순 없다.
그런데 혹서기에 열린 KLPGA투어 4개 대회는 그와는 정반대 양상이다. 우승 스코어가 예상 외로 좋다.
올해 신설된 상반기 마지막 대회 오로라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배소현(31·메디힐)의 우승 스코어는 19언더파였다.
제주 사이프러스 골프앤리조트에서 하반기 첫 대회로 열린 제주삼다수 마스터스에서 고지원(21·삼천리)은 21언더파로 정상을 차지했다.
메디힐·한국일보 챔피언십에서 홍정민(23·CJ)은 전인미답의 29언더파로 시즌 2승째를 거뒀다. KLPGA투어 72홀 최소타&최다 언더파 신기록이다.
지난 26일 끝난 BC카드·한경레이디스컵에서 김민솔(19·두산건설)은 마지막 18번 홀(파5) 극적 이글을 앞세워 19언더파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폭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스코어가 좋은 것은 선수들의 일취월장해진 기량을 간과한 채 설명할 수 없다. 당연히 축하 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최근의 우승 스코어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작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뭘까. 많은 전문가들은 코스 세팅을 꼽는다. 그 중에서도 코스 전장이 많이 짧아졌다고 얘기한다.
혹서기에 열린 KLPGA투어 4개 대회 평균 전장은 6592야드였다. 같은 기간에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4개 대회 평균 전장은 6609야드로 불과 17야드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4개 대회 평균 우승 스코어는 22언더와 17.75언더로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KLPGA투어 우승 스코어가 4.25언더 높다.
물론 토너먼트 코스 세팅이 단순히 코스 길이 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다. 그린 스피드와 경도, 페어웨이 폭과 러프 길이 등 다양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난이도를 결정한다.
LPGA투어가 KLPGA투어에 비해 코스가 어렵게 세팅된다는 건 객관적 사실이다. 문제는 KLPGA투어는 애초에 발표된 코스 제원과 대회 기간 제원이 다른 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든다는 점이다.
혹서기에 열린 4개 대회 공히 대부분 파5홀이 투온이 가능하거나 심지어는 미들 아이언으로도 투온 공략이 가능한 홀이 많았다는 점, 상당수 파4홀이 롱 아이언 공략은 거의 볼 수 없고 쇼트 아이언 또는 웨지샷으로 두 번째샷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는 게 그 방증이다.
이렇듯 14개의 클럽을 고루 사용해야 하는 코스 세팅이 불가능한 상태서 변별력은 애시당초 기대할 수 없다. 장타자들이 미스컷의 고배를 마시는 건 예견된 수순이었다.
KLPGA는 코스 세팅은 스폰서와 클럽측의 견해도 고려해야 한다는 고충을 토로한다. 필드 사이즈, 즉 출전 선수가 많으면 경기 진행 시간 때문에 난도를 높히는 코스 세팅이 불가능하므로 스폰서의 대승적 협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리고 논란이 되고 있는 혹서기 코스 세팅은 선수 보호 차원에서 택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올 들어 세계여자골프에 일본 강세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러면서 많은 골프팬들이 한국 여자골프의 침체를 걱정한다. 그 실마리를 변별력 없는 코스 세팅에서 찾는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다음의 발언들이 그 주장을 뒷받침한다.
작년에 KLPGA투어를 평정하고 올해부터 LPGA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는 윤이나(22·솔레어)는 부진 원인을 묻는 질문에 “LPGA투어 코스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메이저대회인 AIG여자오픈에 출전해 컷 탈락의 쓴맛을 보고 돌아온 이동은(20·SBI저축은행)은 “내 골프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걸 확인한 좋은 경험이었다. 더욱 노력하겠다”고 출전 소감을 밝힌 바 있다.
두 선수의 발언에서 공통으로 읽혀지는 키워드는 ‘KLPGA투어의 코스 세팅 업그레이드’가 아닐까 싶다. 우물안 개구리 방식으로는 글로벌 경쟁력은 절대 담보할 수 없다. 안에서부터 부단한 학습과 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여자골프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화두가 됐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여자 골프 선수들이 골프를 잘치는 비결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물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렇다. 한국 여자골프는 트럼프도 찬사를 보낼 정도로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같지 않다. 대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한국 여자골프의 뿌리인 KLPGA투어가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글로벌 스탠더드 코스 세팅 정착이 그 시작점이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