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안동, 영주를 거쳐 강원도 동해로 가는 영동선 철도 가운데 봉화군 소천면 임기2리 숲터 마을 위쪽에 자리한 작은 간이역 ‘임기역’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하루 이용객이 손에 꼽을 정도로 한산했던 임기역이 지난 11일 문을 연 ‘카페 임기역’ 덕분에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는 것이다.
카페가 문을 연 첫날, 테이블마다 동네 주민들로 가득 찼고 커피는 물론 수제 오미자 에이드와 빙수 등 다채로운 메뉴가 방문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특이하게도 카페 메뉴판에는 가격이 적혀 있지 않다. 이곳은 정해진 가격 대신 일정 금액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방문객들의 따뜻한 마음이 카페 운영의 원동력인 셈이다.
평균 연령 74세에 전체 주민 수가 200명도 채 되지 않는 임기2리에 카페가 들어선 것은 사람의 온기와 따뜻한 커피 향기를 불어넣고자 하는 주민들의 끈기 있는 노력 덕분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임기역은 금강송과 석탄 등 광물을 실어 나르며 활기를 누렸지만, 벌목 산업의 쇠퇴와 폐광으로 인해 역은 점차 사람들의 발길에서 멀어졌고 마을 역시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산길, 들길, 철길, 물길, 숲길이 어우러진 ‘임기 숲터 마을’을 누구나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힘을 모으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는 남원기 마을이장이 있었다.
임기2리 마을 이장 남 씨는 마을 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임기역을 커피 향 가득한 카페로 탈바꿈시키기로 결심하고 2023년 주민들과 함께 ‘쉼이 있는 숲터’라는 주민공동체를 조직했다.
그는 정부 공모사업인 봉화군 신활력플러스사업에 ‘임기 간이역 카페 조성’ 및 ‘약용식물 활용 약용차 개발·판매’ 사업을 제출해 선정됐다.
이후 2024년부터 임기역사 개조 공사와 기찻길 공원 조성 작업이 진행됐고 마침내 카페가 문을 열게 됐다. 카페 내부 인테리어는 물론 역사 앞마당에 꾸며진 예쁜 정원도 모두 주민들의 손길이 닿은 결과물이다.
카페는 단순히 음료를 제공하는 공간을 넘어 마을의 정체성을 외부에 알리고 주민 결속을 다지는 거점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단순한 정차역을 넘어 이제 임기역은 마을 사람들의 쉼터가 됐다.
매일 카페를 찾는 한 주민은 “이렇게 카페가 생기니 추억을 되살리고 정도 나눌 수 있는 동네 사랑방이 생긴 것 같아 너무 좋다”고 말했다.
현재 카페는 10명의 주민공동체 구성원들이 자발적인 봉사활동으로 음료를 제조하며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음료 외에 마을주민이 직접 만든 수제 쿠키도 맛 볼 수 있다.
남 이장은 3개월 간의 파티셰 교육을 수료해 직접 배운 제과 기술로 버터쿠키, 르뱅쿠키, 초콜렛쿠키 등 쿠키 제작을 전담하고 있다.
카페는 가을이 되면 캐모마일과 메리골드 등 직접 심은 꽃을 따서 말린 차도 선보일 계획이다. 단순한 카페를 넘어 계절마다 다양한 자연의 향기를 즐길 수 있는 쉼터로 거듭난다는 것이 당면 목표다.
남 이장은 “카페 임기역은 기부를 통해 운영되는 만큼 수익적인 측면보다는 이곳을 통해 우리 지역과 임기역, 숲터 마을을 널리 알리고 활력을 되찾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봉화=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