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역 광장에 세워진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박정희 동상 철거를 주장하는 측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위법성 여부를 다투는 소송도 시작됐다.
28일 대구시 등에 따르면 국가철도공단이 시를 상대로 ‘동대구역 광장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철거’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21일 소송의 첫 심문기일이 열렸다.
박정희 동상은 민선8기 핵심 사업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 중 하나였다. 시는 지난해 초부터 박 전 대통령의 산업화 업적을 기리는 사업을 추진했다. 구한말 국채보상운동의 구국정신, 1960년 2·28 민주운동의 자유정신과 함께 대구 근대 3대 정신으로 삼고 있는 산업화정신을 기념하겠다는 취지다. 동상 제작은 이 사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시는 지난해 5월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 추진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는 지원조례를 제정했다. 이어 행정부시장과 학계·예술계 인사 등으로 구성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도 조직했다. 사업에 속도를 내 지난해 말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동상도 세웠다. 하지만 이후 조기 대선 상황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사퇴하면서 추진 동력이 줄어들었고 동상 추가 설치 등 이후 예정돼 있던 사업은 사실상 중단됐다.
소송 결과에 따라 박정희 동상의 운명이 결정될 전망이다. 이 소송은 동대구역 광장의 소유와 관리 권한이 어느 기관에 있는지가 핵심 사안이다. 국가철도공단은 공단 소유 부지에 시가 동상을 무단 설치해 위법이라며 원상복구를 요구하고 있다. 시는 동대구역 광장을 실질적으로 관리해왔고 광장 소유권이 곧 대구시로 이양되기 때문에 권한이 시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민단체들도 동상 철거 등을 외치며 반발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앞서 일부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박정희 우상화사업 반대 범시민운동본부’를 조직했고 주민 1만4000여명 서명 요건을 갖춰 기념사업 지원조례 폐지안을 지난 4월 대구시의회에 제출했다. 주민 조례 발안법에 따라 대구시의회 의장은 주민 청구를 수리한 날부터 30일 이내에 청구 조례안을 발의해야 한다. 이에 지난 5월 이만규 대구시의회 의장 명의로 폐지안을 정식 발의했다. 최근 동상 설치 과정에서의 위법성 등에 대한 정부 감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시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평가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섣불리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처지다. 지역에 박 전 대통령의 산업화 공로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