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업계가 패션을 넘어 카페와 레스토랑, 화장품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경기 침체로 명품 소비 성장세가 둔화하자 비교적 부담이 적은 ‘접근 가능한 사치’를 내세우며 소비자 접점을 확대하려는 전략이다.
28일 명품업계에 따르면 루이비통은 다음 달 1일 서울 강남구 ‘루이비통 메종 서울’에 첫 상설 레스토랑 ‘르 카페 루이비통’을 연다. 식기와 음식에 루이비통의 시그니처 패턴 ‘모노그램’을 넣어 브랜드 정체성을 강조했다. 3개에 4만8000원에 달하는 대표 메뉴 ‘비프 만두’ 겉면에도 모노그램 문양이 새겨졌다.
오픈하기 전부터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예약 플랫폼 캐치테이블에선 이날 기준 예약이 가능한 다음 달 15일까지 모든 시간대가 마감됐다.
구찌도 다음 달 4일 강남구 플래그십 스토어에 ‘구찌 오스테리아’를 재단장해 선보인다. 2022년 용산구 ‘구찌 가옥’에서 첫선을 보였다. 피렌체·LA·도쿄에 이은 세계 네 번째 거점으로 서울을 선택해 화제를 모았다.
에르메스는 2006년 문을 연 강남구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지하에 ‘카페 마당’을 운영하며 국내에서 명품 F&B의 포문을 열었다. 자사 접시와 찻잔 등을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게 했다. 이후 디올이 2015년 강남구, 2022년 성동구에 ‘카페 디올’을 열며 유행이 본격화했다. 아메리카노 가격이 1만9000원에 달했지만 예약이 빠르게 마감되며 소셜미디어 ‘인증샷’ 명소로 자리 잡았다.
명품업계가 앞다퉈 카페와 레스토랑을 여는 이유는 소비자가 브랜드 세계관을 직접 체험하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수백만원대를 호가하는 가방 대신 수만원대의 식음료를 통해 제품과 분위기를 경험하도록 했다. 콘텐츠를 다양화해 소비층 충성도를 높이고 신규 소비를 유도하는 전략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가 가방 등을 파는 명품 매장은 일상에서 접하는 빈도가 높지 않은 반면 카페와 식음료는 소비자와의 접점이 보다 많고, 명품의 이미지를 고급스러운 라이프스타일 차원으로 확장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흐름은 화장품·향수 같은 ‘스몰 럭셔리’ 시장 공략과도 연결된다.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3사에서 지난해 프라다·에르메스·지방시 등 명품 화장품 매장 매출은 16~24% 증가했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도 지난해 패션·가죽제품 부문 매출은 2.6% 감소했지만 향수·화장품은 1.8% 늘었다. 불황기에 저렴하면서도 심리적 만족을 주는 제품이 잘 팔리는 ‘립스틱 효과’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루이비통은 오는 29일 뷰티 컬렉션 ‘라 보떼 루이비통’을 공식 출시한다. 립스틱 55종, 립밤 10종, 아이섀도 팔레트 8종으로 구성됐으며 리필 가능한 알루미늄·황동 패키지를 적용했다. 가격은 립 제품 23만원, 아이섀도는 36만원으로 스몰 럭셔리 안에서도 한 단계 높은 포지셔닝을 시도했다. 프라다 뷰티도 지난해 국내에서 공식 론칭하고, 지난 22일 전 세계 최초로 핸드크림을 한국에서 공개했다.
명품업계가 사업을 다각화하는 배경에는 본업 성장세 둔화가 있다. 루이비통·디올·펜디 등이 속한 LVMH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2% 감소했다. 구찌를 보유한 케링 그룹 역시 같은 기간 순이익이 46% 급감했다. 이 교수는 “카페·레스토랑에서의 경험과 화장품 소비로 느끼는 만족감은 가방 등 고가 제품으로 이어지는 연상 효과가 있다”며 “공간 동선에 적절히 상품을 배치하는 등 노출 빈도를 늘려 소비를 유도하는 전략이 병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주은 기자 ju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