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만 믿다간 ‘쪽박’…은퇴자 ‘소득 절벽’ 해법 절실

입력 2025-08-28 05:00
국민일보 DB

중견 건설사에 다니고 있는 이모(32)씨는 지난 4년 동안 개인연금(연금저축)에 매년 400만원을 쏟고 있다. 연평균 수익률이 7%에 달하는 데다 55세부터 조기 수령이 가능한 덕분이다. 이씨는 “법정 정년이 60세라고는 하지만, 경기를 심하게 타는 건설업에선 그때까지 버틸지 불투명하다. 일찍 퇴사하면 개인연금으로 대처하려 한다”고 말했다.

정년퇴직으로 근로 소득이 끊겼지만 수급 연령에 이르지 못해 연금을 받지 못하는 ‘소득 절벽(소득 크레바스)’이 가팔라지고 있다. 정부는 정년 연장을 통해 소득 절벽을 줄인다는 구상이지만 사회적 논의는 제자리 걸음이다. 60~64세 인구 절반 이상에게는 연금 소득이 없다는 등의 통계가 나오면서 개인연금을 소득 공백기의 대책으로 선택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2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노후 대비를 위한 연금저축 적립금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 추세다. 지난해 개인연금 적립금 총액은 178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6.3%(10조8000억원) 증가했다. 2020년 151조7000억원에서 2021년 160조1000억원으로 5.5% 올랐고, 2022년 159조원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2023년에는 167조80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를 두고 개인연금이 공적연금을 보충하는 역할을 넘어 소득 절벽에 대처하는 해법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행 국민연금 체계에선 소득 공백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을 받는 나이(수급개시연령)는 단계적으로 올라 2033년부터 65세로 설정된다. 반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는 나이(의무가입연령)는 정년(59~60세)에 맞춰져 있다. 정년퇴직 후 최대 5년 동안 소득·연금이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연금을 미리 받거나 가입을 연장하는 등 소득 공백을 줄일 방법은 있다. 하지만 경제적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가입을 연장하는 ‘임의계속가입’은 사업자와 분담하던 보험료(9~13%)를 전액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연금을 최대 5년 먼저 받을 수 있는 조기노령연금제도는 받는 시점이 1년 당겨질수록 지급액이 6%씩 감액되도록 설계됐다. 연금 수급액이 최대 30% 줄어들 수 있다.

전문가들은 공적 연금의 사각지대를 개인연금이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근본 해법은 아니라고 본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건강한 노인은 계속 일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며 “다층연금구조 위에서 개인 연금이 소득 절벽을 보완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소득 크레바스를 해소하려면 의무가입연령과 수급개시연령을 일치시켜야 한다. 정년 연장 논의와 고용 상황 등을 고려해서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