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숙청·혁명 있나’던 트럼프, 李 대통령 만나자 “오해 같다”

입력 2025-08-26 07:02 수정 2025-08-26 12:13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식 ‘매복 공격’은 없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5일(현지시간) 첫 정상회담은 시작부터 끝까지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시작 약 2시간 30분을 앞두고 한국에서 “숙청 또는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는 주장을 했지만, 정작 정상회담에서는 “오해인 것 같다”며 한발 물러섰다. 트럼프는 이 대통령과의 회담 내내 미소를 지었고, 회담 뒤엔 이 대통령에 대해 “좋은 남자(guy)”라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영접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는 이날 오후 12시32분쯤 이 대통령이 탑승한 차량이 도착하자 백악관 웨스트윙 입구에 직접 나와 이 대통령을 환영했다. 이 대통령이 차량에서 내리자 트럼프는 이 대통령과 악수를 하며 왼손으로는 이 대통령 팔을 두드리며 친근감을 나타냈다. 두 정상 모두 붉은색 계통의 넥타이를 맸다. 트럼프는 취재진을 향해 “훌륭한 회담을 할 것”이라고 말한 뒤 이 대통령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백악관 내부로 안내했다.

트럼프는 이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도 “이 대통령과 함께하게 돼 영광”이라며 “선거 승리를 축하한다. 큰 승리였다. 우리는 당신과 100% 함께한다”고 덕담을 건넸다.

트럼프에 이어 발언한 이 대통령은 백악관의 인테리어와 미국의 다우존스 지수 상승을 들어 트럼프를 칭찬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취임 뒤 새로 꾸민 오벌오피스에 대해 “황금색으로 빛나는 게 정말 보기 좋다. 품격이 있어 보이고 미국의 새로운 번영을 상징하는 것 같다”고 칭찬했다.

두 정상이 가장 오랜 시간 집중에서 대화하고 공감을 표시한 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대화 추진이었다. 이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회담을 권유하며 “북한에 트럼프월드도 하나 지어서 저도 거기서 골프도 치게 해 달라”고 하자 트럼프는 미소를 짓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피스메이커를 하시면 저는 페이스메이커로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하자 듣고 있는 트럼프는 소리 내 웃기도 했다. 트럼프는 “북한에 대해 큰 진전을 함께 이룰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는 모두발언을 마친 뒤 질의응답을 받기 전 이 대통령과 악수하며 “매우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 도중 웃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회담 직전까지만 해도 트럼프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등과의 정상회담처럼 공격적으로 회담에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트럼프가 정상회담 전 트루스소셜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라며 “숙청 또는 혁명같이 보인다”라고 적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열린 행정명령 서명식에서도 관련 질문을 받자 “최근 며칠 동안 한국에서 교회에 대한 압수수색, 한국 새 정부에 의한 매우 공격적인 압수수색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심지어 우리(미군) 군사 기지에 들어가 정보를 수집했다고 들었다”며 “그렇게 해서는 안 됐을 것인데 나는 안 좋은 일들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트럼프는 정상회담에서 이에 관해 설명해달라는 취재진 질문을 받자 “정보기관으로부터 (한국에서) 교회에 대한 수색(raid)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오해일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교회를 수색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서 그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교회가 수색당하고 일부는 폐쇄됐다는 소식을 정보기관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그 부분은 나중에 다시 논의하겠다”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매우 나쁜 일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답지 않은 일로 들렸다”고도 했다.

트럼프가 한국 특검의 수사 과정을 언급하기 위해 ‘숙청’ 같은 과격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회담 직전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는 정상회담 2시간여를 앞두고 이런 말을 한 뒤, 실제 회담에서는 이같은 입장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모두발언 뒤 관련 질문을 받은 뒤 곧바로 “오해인 것 같다”며 입장을 바꾼 것은 결국 ‘협상용’ 기선 제압을 위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의 강성 지지층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위한 미국 국내용 메시지라는 분석도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로라 루머나 스티브 배넌 등 MAGA에서 한국 선거 결과에 대해 계속 불만을 이야기하니 지지층을 위한 메시지를 낸 것으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트럼프와 가까운 극우 활동가 로라 루머나 고든 창 등이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해 “공산주의자”들의 영향이라고 말한 바 있지만 트럼프가 그동안 이를 직접 언급한 바는 없었다.

이 대통령은 이에 대해 “간단히 말씀을 드리자면 지금 대한민국은 친위쿠데타로 인한 혼란이 극복된 지 얼마 안 된 상태”라며 “내란 상황에 대해 국회가 임명하는 국회가 주도하는 특검에 의해서 사실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물론 (특검이) 저의 통제하에 있지는 않지만 지금 검찰(특검)이 하는 일은 팩트체크”라고 덧붙였다. 트럼프는 이 대통령의 설명을 경청했고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질의응답 과정에서 “한국에 매우 따뜻한 감정을 느낀다”고도 했다.

트럼프는 이날 트루스소셜에 이 대통령을 영접하는 장면과 인사하는 장면, 오벌오피스 모두발언 장면 등 정상회담 영상 3개를 올렸다.

트럼프는 이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뒤 진행한 포고문 서명식에서 “그(이 대통령)는 매우 좋은 남자이며 매우 좋은 한국 대표”라고 칭찬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서 한국의 정치적인 여건을 비판했지만 회담에서는 긴장을 피했다”며 “이번 정상회담은 두 지도자가 첫 만남으로 친밀감(rapport)을 형성하는 기회가 됐다”고 평가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