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식 ‘매복 공격’은 없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5일(현지시간) 첫 정상회담은 시작부터 끝까지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시작 약 2시간 30분을 앞두고 한국에서 “숙청 또는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는 주장을 했지만, 정작 정상회담에서는 “오해인 것 같다”며 한발 물러섰다. 트럼프는 이 대통령과의 회담 내내 미소를 지었고, 회담 뒤엔 이 대통령에 대해 “좋은 남자(guy)”라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이날 오후 12시32분쯤 이 대통령이 탑승한 차량이 도착하자 백악관 웨스트윙 입구에 직접 나와 이 대통령을 환영했다. 이 대통령이 차량에서 내리자 트럼프는 이 대통령과 악수를 하며 왼손으로는 이 대통령 팔을 두드리며 친근감을 나타냈다. 두 정상 모두 붉은색 계통의 넥타이를 맸다. 트럼프는 취재진을 향해 “훌륭한 회담을 할 것”이라고 말한 뒤 이 대통령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백악관 내부로 안내했다.
트럼프는 이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도 “이 대통령과 함께하게 돼 영광”이라며 “선거 승리를 축하한다. 큰 승리였다. 우리는 당신과 100% 함께한다”고 덕담을 건넸다.
트럼프에 이어 발언한 이 대통령은 백악관의 인테리어와 미국의 다우존스 지수 상승을 들어 트럼프를 칭찬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취임 뒤 새로 꾸민 오벌오피스에 대해 “황금색으로 빛나는 게 정말 보기 좋다. 품격이 있어 보이고 미국의 새로운 번영을 상징하는 것 같다”고 칭찬했다.
두 정상이 가장 오랜 시간 집중에서 대화하고 공감을 표시한 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대화 추진이었다. 이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회담을 권유하며 “북한에 트럼프월드도 하나 지어서 저도 거기서 골프도 치게 해 달라”고 하자 트럼프는 미소를 짓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피스메이커를 하시면 저는 페이스메이커로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하자 듣고 있는 트럼프는 소리 내 웃기도 했다. 트럼프는 “북한에 대해 큰 진전을 함께 이룰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는 모두발언을 마친 뒤 질의응답을 받기 전 이 대통령과 악수하며 “매우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회담 직전까지만 해도 트럼프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등과의 정상회담처럼 공격적으로 회담에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트럼프가 정상회담 전 트루스소셜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라며 “숙청 또는 혁명같이 보인다”라고 적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열린 행정명령 서명식에서도 관련 질문을 받자 “최근 며칠 동안 한국에서 교회에 대한 압수수색, 한국 새 정부에 의한 매우 공격적인 압수수색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심지어 우리(미군) 군사 기지에 들어가 정보를 수집했다고 들었다”며 “그렇게 해서는 안 됐을 것인데 나는 안 좋은 일들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트럼프는 정상회담에서 이에 관해 설명해달라는 취재진 질문을 받자 “정보기관으로부터 (한국에서) 교회에 대한 수색(raid)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오해일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교회를 수색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서 그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교회가 수색당하고 일부는 폐쇄됐다는 소식을 정보기관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그 부분은 나중에 다시 논의하겠다”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매우 나쁜 일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답지 않은 일로 들렸다”고도 했다.
트럼프가 한국 특검의 수사 과정을 언급하기 위해 ‘숙청’ 같은 과격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회담 직전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는 정상회담 2시간여를 앞두고 이런 말을 한 뒤, 실제 회담에서는 이같은 입장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모두발언 뒤 관련 질문을 받은 뒤 곧바로 “오해인 것 같다”며 입장을 바꾼 것은 결국 ‘협상용’ 기선 제압을 위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의 강성 지지층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위한 미국 국내용 메시지라는 분석도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로라 루머나 스티브 배넌 등 MAGA에서 한국 선거 결과에 대해 계속 불만을 이야기하니 지지층을 위한 메시지를 낸 것으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트럼프와 가까운 극우 활동가 로라 루머나 고든 창 등이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해 “공산주의자”들의 영향이라고 말한 바 있지만 트럼프가 그동안 이를 직접 언급한 바는 없었다.
이 대통령은 이에 대해 “간단히 말씀을 드리자면 지금 대한민국은 친위쿠데타로 인한 혼란이 극복된 지 얼마 안 된 상태”라며 “내란 상황에 대해 국회가 임명하는 국회가 주도하는 특검에 의해서 사실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물론 (특검이) 저의 통제하에 있지는 않지만 지금 검찰(특검)이 하는 일은 팩트체크”라고 덧붙였다. 트럼프는 이 대통령의 설명을 경청했고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질의응답 과정에서 “한국에 매우 따뜻한 감정을 느낀다”고도 했다.
트럼프는 이날 트루스소셜에 이 대통령을 영접하는 장면과 인사하는 장면, 오벌오피스 모두발언 장면 등 정상회담 영상 3개를 올렸다.
트럼프는 이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뒤 진행한 포고문 서명식에서 “그(이 대통령)는 매우 좋은 남자이며 매우 좋은 한국 대표”라고 칭찬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서 한국의 정치적인 여건을 비판했지만 회담에서는 긴장을 피했다”며 “이번 정상회담은 두 지도자가 첫 만남으로 친밀감(rapport)을 형성하는 기회가 됐다”고 평가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