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연계 단체인 기아 감시 시스템 통합식량안보단계(IPC)가 최근 가자지구에 대해 ‘기근’을 선포했지만, 이스라엘 당국은 정치적 동기가 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앞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뉴욕타임스의 기아 보도가 ‘가짜’라고 주장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하기도 했다.
22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가자지구 의사들은 돌출된 갈비뼈와 앙상한 팔다리가 심각한 영양실조의 증거이며, 특히 어린이와 부상자, 환자들이 가장 큰 위험에 처해있다고 경고했다.
텍사스 출신의 외과의사 모하메드 아딜 칼릴 박사가 가자시티 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달 초, 식량 배급소에서 음식을 받으려다 총상을 입은 17세 청소년이 실려 왔다. 청소년의 갈비뼈는 돌출돼 있었고, 이는 심각한 영양실조를 나타내는 신호였다고 칼릴 박사는 말했다. 치료를 받고 어느 정도 안정되자 이 청소년은 붕대로 감싼 손을 들어 빈 입을 가리켰다. 배고프다는 뜻이었다.
칼릴 박사는 “굶주림의 수준이 정말 가슴 아프다”며 “지난해 11월에도 영양실조가 시작되는 것을 봤지만 지금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IPC는 처음으로 “가자시티 일부 지역에서 기근이 발생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수십만명의 팔레스타인인이 기근 속에 갇혀 있으며, 다음 달 말까지 가자지구 전역으로 기근이 확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은 IPC의 기근 발표를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비난했다. 최근 식량을 비롯한 구호 물품 반입을 확대하고 있지만, 하마스가 구호품을 빼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엔은 “이스라엘의 제한 조치와 치안 붕괴가 식량 전달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스라엘 당국은 기근을 외면하고 있지만, 병원 곳곳에서 기근의 흔적이 드러나고 있다.
가자시티 시파 병원 영양팀장 무함마드 쿠헤일 박사는 영양 부족으로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아이야 스베데(15)를 소개했다. 공습으로 다친 그는 음식이 부족해 체중의 3분의1 이상 줄어 치료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다른 환자 카람 아쿠메는 밀가루를 구하러 나갔다가 총에 맞아 장이 손상됐다. 그러나 영양 수액이 부족해 체중이 62㎏에서 35㎏까지 줄었다. 그의 아버지는 “가자 전역의 병원을 돌며 영양 수액을 찾았지만 구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칼릴 박사는 “갈비뼈가 돌출된 환자, 말라붙은 팔다리를 가진 환자들이 끊임없이 병원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들은 칼로리를 전혀 섭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IPC는 “휴전과 대규모 인도적 지원이 없다면 가자 전역으로 기근이 확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비영리단체 메드글로벌 역시 “어린이와 임산부 사이에 심각한 영양실조가 급증하고 있다. 가자 어린이 전원이 굶주림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