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해 여성을 불법촬영한 영상과 성착취물 등을 공유하는 이른바 ‘중국판 N번방’ 사건이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사건을 외면한 채 관련 게시물을 검열 및 삭제하는 데 집중해 비판을 받고 있다.
25일 CNN 등에 따르면 20대 여성 D씨는 최근 ‘당신의 영상이 유출된 것을 아느냐’는 익명의 메시지를 받고 전 남자친구가 자신의 사적인 사진과 영상 20여개를 대규모 비공개 텔레그램 방에 퍼뜨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지난달 18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에 텔레그램 대화방 캡처 화면을 올리고 피해 사실을 “중국의 N번방”이라고 피해 사실을 알렸다. 게시물은 4만명 이상이 ‘좋아요’를 누르고 2만 차례 이상 공유됐으나 다음 날 D씨의 채널은 폐쇄됐다.
D씨가 폭로한 텔레그램 대화방은 ‘마스크파크 비밀포럼’(MaskPark)이라는 이름의 중국어 채널로, 가입자만 10만명 이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국영 남방도시보에 따르면 이 대화방에서는 지하철, 공중화장실, 쇼핑몰, 병원 초음파실 등에서 몰래 촬영한 여성의 사진과 영상은 물론, 여자친구나 여성 가족을 촬영한 영상 등도 공유됐다. 일부 사용자는 피해 여성의 개인정보를 함께 게시하거나 불법촬영 장비를 판매하기도 했다.
중국 네티즌들은 이 사건을 한국의 ‘N번방’에 빗대어 ‘중국판 N번방’이라 부르며 분노를 쏟아냈으나 당국은 침묵을 지키며 오히려 관련 게시물 검열을 강화했다. 공안부 등 당국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징후도 아직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CNN은 체제 안정에 집착하는 집권 중국공산당이 사회운동이나 불만·반대 의견을 표하는 조직적 행동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으며 그 연장선에서 여성 권리를 옹호하는 캠페인도 강하게 단속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피해 폭로 글,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는 글, 불법촬영 주의 글 등이 대거 삭제되거나 접근이 차단되는 등 검열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여권 활동가들은 이번 사건이 한국의 N번방과 유사하나 결과는 다를 것이라며 비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N번방 사건 주범들이 붙잡혀 징역형을 선고받고 성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법적 개혁이 이뤄졌지만, 중국에서는 유사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가 약하기 때문이다.
중국 법상 음란물 제작·판매·유포는 영리 목적일 경우 무기징역까지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최대형량이 징역 2년에 불과하다. 여기에 텔레그램이 중국 내에서 차단된 플랫폼이라 증거 확보가 어렵고 당국의 수사 의지도 미약하다는 점이 문제로 꼽히고 있다.
조승현 기자 cho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