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망신당하기 십상

입력 2025-08-24 19:10

일은 회식이 끝난 후 벌어졌다. 그날 회식은 회사 정기인사로 떠나는 여직원을 송별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아쉬운 송별 자리였지만, 나름 흥겹게 술 한 잔씩을 걸쳤다. 과장 1년 차인 그도 평소 친하다고 생각했던 직원을 떠나보내는 자리여서인지 주량보다 조금 더 마신 것 같다. 무사히 1차 회식 자리를 마무리하고 식당 밖으로 나왔는데,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른 직원들은 우산을 가지고 온 직원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2차 자리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는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아서 식당 처마 밑에 있다가 술기운이었던지 비를 맞으며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그 순간 정기인사로 떠나는 여직원이 그에게 다가오더니 우산을 씌워주었다. 그는 고마운 마음과 술기운에 감정이 과해져서 울컥해졌다.

그 마음만 표현했더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고마움의 표현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이 너무 과했다. 그는 여직원에게 “나 생각해주는 사람은 자네밖에 없네. 자네 너무 이뻐.”라고 말하며 양손으로 우산을 든 여직원의 팔을 감싸 잡아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의 갑작스러운 과잉행동에 놀란 여직원이 “하지 마세요.”라고 말했으나, 그는 재차 팔을 끌어당겼다. 그러자 여직원이 도망치듯이 뛰어갔다. 그때야 비로소 그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으나, 이미 늦었다.

2차 자리에서 그와 여직원은 저만치 떨어져 앉은 채 대화는 물론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라도 사과했어야 했다. 사과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직원들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2차 자리가 끝날 때까지도 사과하지 못했다. 적어도 그 자리에서 사과했다면 일이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음 날, 술이 깨고 여직원과 있었던 일 때문에 찝찝하기는 했지만, 그는 정상적으로 출근하여 평소처럼 열심히 일했다. 몇 주 동안 평화로운 일상생활이 이어지면서 그는 여직원과 있었던 일을 모두 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경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되었으니 조사받으러 오란다. 그 순간 지난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과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경찰 조사에서 그는 당시 그가 한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모두 인정했지만, 여직원이 고마워서 나온 말과 행동일 뿐 성적 불쾌감을 줄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그는 모르고 있었다. 성적 불쾌감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적인 사람을 기준으로 판단된다는 사실을. 그는 결국 강제추행죄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고, 다니던 공기업에서도 해임됐다.

‘그’의 말과 행동이 아무 일도 아니었던 시절이 있었다. 음담패설과 가벼운 신체접촉을 일삼아도 낭만처럼 회자되던, 어쩌면 피해자에게는 야만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은 지나간 지 오래되었다. 그 시절처럼 행동해서는 망신당하기 십상임을 명심할 일이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