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막을 수 있던 최고기관”…한덕수 전 총리 구속영장 청구

입력 2025-08-24 17:58 수정 2025-08-24 19:41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 22일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사건을 수사하는 조은석 특별검사팀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으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 중인 조은석 특별검사팀이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한 신병 확보에 24일 나섰다.

특검팀은 한 전 총리가 국정 운영 전반과 계엄 선포에서 책임을 지는 국무총리임에도 불법 계엄에 따른 내란 행위를 적극적으로 막지 못하고 방조했다는 점 등을 들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전직 국무총리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할 경우 다른 국무위원을 겨냥한 수사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검팀은 한 전 총리에 대해 내란 우두머리 방조 및 위증, 허위공문서 작성, 공용서류손상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이날 청구했다고 밝혔다.

박지영 특검보는 브리핑을 통해 “범죄가 중대하고 증거 인멸 및 도주의 우려, 재범 위험성이 있다”며 “범죄 혐의에 대해 충분하게 소명할 수 있는 증거는 수집됐다”고 설명했다.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26~27일쯤 열릴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총리는 ‘제1 국가기관’이자, 대통령 독주를 견제할 책임이 있는 국무총리로서 윤석열 전 대통령 불법 비상계엄 선포를 막지 못하고 방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 22일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사건을 수사하는 조은석 특별검사팀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으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과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국무총리는 대통령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고, 행정기관의 장을 지휘·감독한다. 국방부 장관이나 행정안전부 장관의 계엄 선포 건의 또한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하게 돼 있다. 국무회의 역시 국무총리가 부의장 역할을 맡는다.

특검팀은 제헌헌법 초안을 작성한 유진오 전 법제처장이 ‘대통령의 독주를 막기 위해 국회 승인을 거쳐 총리를 임명하도록 했다’고 밝힌 점 등을 근거로 헌법상 명시적인 규정이 없더라도 국무총리는 대통령 권한 남용을 견제할 마땅한 의무가 있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이 불법 비상계엄을 선택한 것과 관련해 국회 동의를 거쳐 임명된 국무총리가 이를 견제할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박 특검보는 이와 관련해 “국무총리는 행정부 내 대통령이 임명하는 유일한 공무원으로 헌법 수호 책무를 보좌하는 제1의 국가기관”이라며 “대통령의 자의적 권한 행사를 사전에 견제·통제할 수 있는 헌법상 장치인 국무회의 부의장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박 특검보는 이어 “즉 한 전 총리는 위헌 위법한 계엄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최고의 헌법기관이었던 것”이라며 “이런 지위와 역할 등을 고려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덧붙였다.

특검팀은 한 전 총리가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한 것도 계엄을 막으려고 한 게 아닌 절차상 합법적인 외관을 갖추기 위한 차원이었다며 구속영장에 기재했다.

특검팀은 그러면서 한 전 총리가 국무회의 개의에 필요한 국무위원 정족수 11명을 채우는 데 급급했을 뿐, 정상적인 국무위원 심의가 이뤄지도록 하는 데는 소홀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한 전 총리는 최초 계엄 선포문의 법률적인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사후 선포문을 작성하고 폐기한 혐의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5일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이 작성한 허위 계엄 선포 문건에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서명한 후 ‘사후에 문서를 만든 게 알려지면 또 다른 논쟁이 발생할 수 있다’며 폐기를 지시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특검팀은 이 역시 한 전 총리가 계엄에 합법적인 외피를 씌우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주요 증거라고 본다.

한 전 총리는 또 ‘계엄 선포문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헌법재판소와 국회 등에서 위증한 혐의도 받는다.

한 전 총리는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증언에서도 “언제 어떻게 그걸(계엄 선포문) 받았는지는 정말 기억이 없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지난 19일 조사에선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선포문을 받았다”며 기존 진술을 번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증 혐의를 인정한 것이다.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한 전 총리 자택과 국무총리 공관 등을 압수수색해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압수수색 전후로 한 전 총리를 세 차례 소환해 의혹 전반을 확인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