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민들, 우리 정부 진정성 느낀 회담”… 과거사 언급 아쉬움도

입력 2025-08-24 17:16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23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공동 언론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7년 만에 한·일 공동 언론발표문을 만들어낸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요동치는 글로벌 정세 속에서 양국의 협력 의지를 공고히 다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역사 인식에 대해 한·일 정상 간의 공감대를 형성한 것, 양국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사회 문제에 대해 함께 논의할 협의체 구성을 약속한 점 등이 눈에 띄는 성과로 꼽혔다. 다만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언급이 부족했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이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지난 23일 당초 예정된 회담 시간을 넘겨 2시간가량 회담을 이어갔다. 지방 활성화·저출산·고령화 등 공통의 사회 과제 해결을 위한 당국 간 협의체 구성에 합의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공동언론발표문에서 이시바 총리가 “1998년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언급한 부분에 의미를 뒀다.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는 회담을 통해 한·일의 우호 협력관계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킨다는 내용의 선언을 내놨다. 오부치 전 총리는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해 반성과 사죄를 밝혔다. 한·일 외교 사상 처음으로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죄를 공식 합의 문서로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24일 통화에서 “일본 국민이 우리 정부의 진정성을 인정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며 “짧은 준비임에도 불구하고 공동 합의문도 만들어냈다. ‘새로운 파트너십 2.0’을 이 대통령 임기 내에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 대해 쓴소리도 나왔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을 배려하고 역사 문제가 중심이 되지 않도록 의도했던 것 같지만 자칫 앞으로 과거사 문제는 (정상 간 대화에서) 다루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읽히거나 한국이 이 부분에 대해 강경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최 연구위원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언급한 것도 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총리가 2023년 방한 기자회견에서 말한 내용에서 더 나아간 것은 없었다”며 “최근 이시바 총리가 전몰자 추도식에서 ‘반성’을 언급한 만큼 이를 한 번 더 강조해주거나 개인적 입장을 달아서라도 더 나아간 메시지를 내주길 기대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양국 공통의 사회 문제와 관련해 협의체를 만든 건 하나의 성과지만 역사 문제에 대해선 국내의 피해자들과 시민단체가 만족할 만한 수준이 나오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한·일간 충분히 논의됐다는 게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의 설명이다. 위 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양국 정상은) 과거 문제에 대한 논의에 꽤 상당 기간을 할애했다. 협의 과정에서는 과거 문제가 충분히 논의됐으나 발표문 내용은 일본 정부의 노선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식 회담장에서보다 물밑 논의는 더 많았으나 참의원 선거 후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는 이시바 정권의 입장을 반영한 발표문이라는 것이다.

위 실장은 “과거 문제를 어떻게 해야 현재,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해 의견을 개진했고, 일본 측에서도 진솔한 표현이 있었다”고 부연했다.

이 교수는 “과거사 문제는 신뢰가 중요하다는 화법으로 간접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다”며 “일본의 국내 사정을 보더라도 지금은 (일본에) 과거사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화답을 기대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