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이 날아다니는 주방, 조프소프트가 맛을 내는 방법

입력 2025-08-23 04:48

“이 라면은 이 집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맛이야.”

슈팅과 요리를 섞은 3인칭 협동 액션 슈팅 게임 ‘피자 밴딧(Pizza Bandit)’은 별나고 괴상하지만 궁금증을 자아낸다. 슈팅과 쿠킹이라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두 장르는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까, 이 게임은 그 질문에 답하고 싶어한다.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피자 밴딧의 도전은 곧 막이 오른다. 조프소프트는 오는 25일 피자 밴딧을 스팀과 에픽게임즈를 통해 얼리 액세스(미리 해보기) 형태로 선보인다.

조프소프트는 지난 20일 독일 쾰른에서 개막한 세계 최대 게임쇼 게임스컴 2025에 부스를 차리고 얼리 액세스 버전을 사전에 게이머들에게 공개했다. 개발진은 게이머들의 반응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본 뒤 숙소로 돌아가 수정 작업을 벌인다. 날짜 구분이 잘 안 될 정도로 밤낮없이 일에 몰두하고 있다고.


22일 게임쇼 현장에서 만난 박후규 게임 디렉터는 원래 ‘쉬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순수 슈팅만으로는 피로도가 높다는 피드백이 있었다. 그래서 발상을 전환했다. 박 대표는 “웨이브 클리어 후 잠시 쉬는 시간 대신 다른 경험을 주고 싶었다”며 “팀원 모두 피자를 좋아하다 보니 전투와 요리를 결합한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게임의 탄생 비화를 소개했다.

처음에는 생소하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요리 요소가 여성 이용자를 끌어들이며 팬층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총만 쏘는 게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유저들이 관심을 보였다”는 게 박 디렉터의 설명이다.

피자 밴딧은 크게 세 가지 차별점을 갖는다. 첫째, 전투와 요리가 교차하며 플레이어가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한다. 둘째, 난전을 전제로 한 전투 구조다. 몬스터의 공격을 구르고 피하며 요리를 이어가야 한다. 셋째, 슈팅 부분의 난이도를 낮춰 남녀노소가 쉽게 즐길 수 있게 구현했다. 이 과정에서 여성 게이머의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게임의 주인공은 ‘말릭’이라는 전직 용병이다. 요리사의 꿈을 안고 식당을 차렸지만 사기를 당해 이를 메우고자 다시 현상금 사냥꾼으로 돌아간다는 설정이다. 말릭은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 이집트, 콜롬비아 정글, 회전초밥집 등 기상천외한 무대에서 전투를 벌이면서도 요리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박 디렉터는 “엉뚱하면서도 치밀하게 연결되는 서사가 서구권 게이머들에게 특히 잘 먹히고 있다”면서 웃었다.

조프소프트는 유저 피드백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전시회 부스를 돌며 직접 플레이 모습을 관찰하고, 디스코드 채널에서 전 세계 이용자와 소통했다. 동시에 게임 내 로그 데이터를 분석해 게이머들이 말하지 않는 불편 요소를 찾아내는 과정을 반복했다.

박 디렉터는 “개발자가 재밌다고 느낀 부분을 유저가 어렵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데이터와 피드백을 함께 반영하는 것이 현재 개발의 우선순위”라고 말했다.

국가별 성향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피자 밴딧을 가장 많이 즐기는 지역은 북미다. 전체 이용자의 약 40%를 차지한다. 일본은 마케팅을 크게 하지 않았음에도 자연 유입만으로 1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해 개발진을 놀라게 했다. 중국 역시 유저 수가 적지 않지만, 인구 규모에 비하면 기대만큼의 수치는 아니다. 반면 한국은 약 3%로 비교적 낮은 비중이다.

박 디렉터는 “초기 마케팅을 북미와 유럽에 집중한 탓도 있지만 국가별로 선호 성향이 달라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가령 한국·중국은 경쟁과 속도감을 중시하는 반면, 서구권은 스토리와 꾸미기 요소에 호응하는 경향이 크다. 일본은 게이머들의 피드백이 적어 시장을 알기 어렵지만, 꾸준한 유입이 이어지고 있어 잠재력을 가진 시장으로 꼽힌다.

조프소프트는 앞서 3인칭 협동 슈팅 게임 ‘리프트 스위퍼스’를 출시했지만 낮은 클리어율과 성급한 얼리 액세스로 실패를 경험했다. 당시 첫 레벨 클리어율이 2%에도 못 미쳤다. 개발진은 “너무 하드코어했던 점을 반성했다”며 “이번에는 재미를 최우선으로 두고 유저가 납득할 때까지 다듬어 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때 크게 망했기 때문에 지금 피자 밴딧을 제작하면서 유저의 마음을 더 읽으려고 노력하게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조프소프트는 불과 6명의 소규모 팀이지만 모두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을 오랜 기간 제작한 베테랑들이다. 네오위즈 ‘블레스’ 개발진을 주축으로 2018년 창업해 지금까지 팀을 유지해왔다. 직책은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기획·프로그래밍·아트를 누구든 두루 맡으며 수평적으로 협업한다. “피자 한 판 시키면 팀 모두가 나눠 먹을 정도의 규모라 의사소통이 빠르다”는 것이 개발팀의 자부심이다.

조프소프트는 지난해 크래프톤에 인수되며 자회사로 편입됐다. 박 디렉터는 “우리가 크래프톤을 선택했다기보다, 크래프톤이 가능성을 보고 선택해준 것”이라며 “작은 팀이지만 게임을 완성해낼 수 있는 역량을 높게 평가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계적인 게임사 크래프톤의 이름값은 부담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게임을 알릴 기회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피자 밴딧은 오는 25일 얼리 액세스를 시작한다. 내년 정식 출시가 목표다. PS5와 닌텐도 스위치 같은 콘솔 버전 출시도 염두에 두고 있다.

박 디렉터는 “대박 흥행보다 중요한 건 존재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슈팅과 요리를 결합한 가볍고도 매운 맛은 피자 밴딧밖에 낼 수 없도록 만들고 싶다”며 “많이 팔리지 않더라도 ‘이 집만의 맛’으로 기억되는 게임, 그런 스튜디오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쾰른=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