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매견 됐다?” 캐나다 간 개농장 구조견의 진짜 근황 [개st하우스]

입력 2025-08-2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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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kg 넘는 대형견들은 국내 입양처를 찾기 어려워, 연간 3000여 마리가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해외 입양절차를 밟는다. 근황을 추적하기 어려워 일각에서는 '알래스카 등지에서 썰매견으로 착취당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좌측: 동물구조단체 페타, 우측: 전병준 기자

“미국, 캐나다 등 해외로 입양된 국내 구조견들의 근황은 베일에 가려 있었습니다. 현지에 도착한 뒤 여러 보호시설을 전전하기도 하고, 입양이 성사되더라도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가 없거든요. 10시간 넘는 시차 때문에 특히 북미권 보호자와 소통하는 건 특히 까다롭습니다. 소식이 끊기는 일이 흔해 온라인상에서는 ‘개들을 영하 50도 알래스카에서 썰매견으로 부려먹는 거 아니냐’는 오해가 생기기도 합니다.”
-동물구조단체 휴메인월드포애니멀즈 한국지부 이상경 팀장

동물단체 추산에 따르면 한해 3000여 마리의 국내 구조견이 미국, 캐나다 등 해외로 떠납니다. 대부분 시골에 방치된 마당개 혹은 불법 개농장에서 구조된 개들인데요. 체중 20㎏이 넘는 진도 믹스견이나 50㎏까지 자라나는 대형 도사견이 대다수라 인구 80%가 아파트나 빌라에 거주하는 국내에서는 입양이 성사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해외로 눈을 돌려 입양처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데요. 2년 전 국제동물보호단체 휴메인월드포애니멀즈(휴메인월드)가 구조한 충남 아산의 농장개 56마리도 일찌감치 국내 입양을 포기하고 캐나다에서 견생 2막을 열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절차를 밟았습니다(‘개농장 폐쇄 후 ‘농장개’들에게 생긴 일’ 2023년 8월 26일 보도). 입양처가 확정된 것이 아니고 캐나다로 일단 거처를 옮겨 현지에서 가족을 모집하는 방식입니다.

출국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동물단체 활동가들은 농장개들에게 눈물의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활동가들은 “직접 이유식을 떠먹이고 행동교육도 해준 녀석과 헤어지려니 미안함이 크다” “좋은 곳으로 보내는 것이지만 헤어지려니 눈물이 난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현장을 담은 영상과 기사에는 ‘개들이 알래스카 썰매견으로 쓰이지 않도록 하라’ ‘입양 이후 근황도 꼭 점검해달라’ 같은 우려 섞인 댓글이 400개 넘게 달렸습니다.

동물단체 페타가 공개한 알래스카 썰매견들의 열악한 현실. 몇몇 개는 진도 믹스견으로 추정돼, 해외 입양된 국내 구조견들 아니냐는 의혹을 부르는 단초가 됐다. 동물단체 페타

그로부터 2년이 지났습니다. 개st하우스는 지난 10·12일 이틀에 걸쳐 당시 한국을 떠났던 농장개들 가운데 도사견과 진돗개를 각각 입양한 두 명의 현지 주민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구조견들에 대한 첫 교육을 담당했던 휴메인월드의 캐나다 재활치료센터 관계자의 얘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을 통해 2년 전 비행기에 오른 농장개들의 반가운 근황을 확인했습니다.



농장개에서 반려견으로…캐나다에서 이룬 견생역전

캐나다에 도착한 농장개 56마리 중에서 입양에 성공한 것은 모두 53마리. 현지 봉사자 가정에서 임시보호를 받는 3마리를 제외하면 모두 입양에 성공했습니다. 입양 성공률이 95%에 다하는 놀라운 기록입니다. 그 가운데 두 명의 입양자와의 화상 인터뷰를 통해 30kg의 도사견 도반이와 25㎏의 진도 삼순이의 행복한 근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공항을 통해 한국을 떠난 녀석들을 다시 본 건 딱 2년 만이었습니다.

우선 지난 12일 도반이를 입양한 퀘백 주민 덴씨를 만났습니다. 덴씨가 이름을 부르자 30㎏ 넘는 거구의 도반이가 얌전하게 덴씨의 곁에 앉더군요. 덴씨는 “지난해 5월쯤 도반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였다”면서 “제가 운영하는 잡화점의 손님들도 도반이를 귀여워한다”고 합니다. 초등학생보다 큰 덩치가 부담스럽지 않냐는 질문에 덴씨는 “캐나다는 워낙 대형견이 많아서 도반이가 크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면서 “워낙 순한 친구라 목줄 없이 산책해도 전혀 문제없다”고 전합니다.

캐나다 퀘백의 주민 덴씨 품에서 지내고 있는 도사견 도반이. 성격이 유순해 목줄이나 입마개 없이 자유로운 견생을 보내고 있다. 동물단체 휴메인월드포애니멀즈 제공

국내법상 맹견으로 지정돼 외출시 입마개를 착용해야 하는 국내 도사견의 처지를 고려하면 도반이는 그야말로 행복한 견생을 누리고 있는 셈입니다. 이어서 덴씨는 “퀘백의 현재 기온은 35도를 웃돌아 무척 덥지만 도반이가 산책을 워낙 좋아해서 산책을 안할 수가 없다. 매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도반이와 함께 동네를 돌고 있다”며 웃었습니다.

앞서 지난 10일에는 진도 삼순이를 입양한 또 다른 퀘백 주민 카리나씨와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삼순이는 유독 소심해 입양 전 머물렀던 재활치료센터에서도 사람을 피해 구석에 숨기 바빴는데요. 2023년 10월 임시보호를 자원한 카리나씨를 만나면서 견생이 바뀌었습니다. 카리나씨는 “삼순이를 만나기 전부터 사회화에 어려움을 겪는 개 여러 마리를 임시보호한 경험이 있다”면서 “사람만 보면 두려움에 떠는 삼순이의 처지가 딱해 몇 주만 임시보호하려고 했는데 그만 정이 들어서 반려견으로 맞이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삼순이의 사회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고 합니다. 집에 데려온 첫 달 내내 구석에만 틀어박힌 채 사람 손길을 피했습니다. 하지만 카리나씨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문가가 운영하는 유튜브 속 솔루션을 매일 꾸준히 따라했다”면서 “처음에는 간식을 주면서 터치 연습, 다음에는 목줄, 이어서 목줄을 맨 채 산책에 성공하기까지 꼬박 3주가 걸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입양자 카리나씨를 만나 견생역전에 성공한 삼순이의 근황

카리나씨네 동네에는 삼순이 외에도 한국 개농장에서 구조돼 입양온 개 10여 마리가 있다고 합니다. 카리나씨가 보내온 영상 속에는 삼순이가 덩치 큰 개들과 어울려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통화 중에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알라딘’의 주제곡 ‘아름다운 세상(A Whole New World)’을 부르더니 “구조견을 돌보는 건 힘들지만 마음을 열고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는 순간이 오면 정말 큰 감동이 찾아온다”며 “그게 바로 입양의 즐거움”이라고 말했습니다.

재활치료→지역 보호단체→입양자 품으로

도반이와 삼순이의 놀라운 견생역전이 성공한 데는 캐나다 도착 후 지냈던 재활치료센터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휴메인월드가 퀘벡에서 운영하고 있는 이 센터에는 매년 세계 각지의 학대 및 유기견 200여 마리가 입소한다고 합니다. 특히 개농장에서 갓 구조된 개들은 인간과의 교감 없이 좁은 철창에서 3, 4마리씩 구겨지듯 갇혀 산 탓에 온갖 질병에 시달리고 사람을 경계하는 등 문제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바 디미아노비치 총괄은 “입소한 개들은 행동전문가와 동물보건사의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뿐만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고 운동장을 뛰노는 과정을 통해 기초적인 사회성을 기르고 반려견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규칙을 몸에 익힌다”고 설명합니다. 이 과정이 끝난 개들은 캐나다 각지의 협력단체나 자원봉사자 가정으로 옮겨져 본격적인 입양 준비에 들어갑니다.

시설 생활에 적응하는 속도는 개마다 다릅니다. 빠르면 2~3주 만에 적응을 마치고 입양이 성사되는 개도 있고, 몇 개월간의 준비기간이 필요한 개도 있죠. 센터 측은 개체별 발달 현황을 점검해 온라인 프로필로 공개하고 있었습니다. 개들의 건강과 성격을 관리하는 자스민 갈리안 동물보건사는 “입소한 동물들은 각자의 적응 속도에 맞춘 돌봄을 받는다”며 “입양 후 모니터링도 진행해 혹여나 입양 가정에서 적응에 실패해도 언제든 센터로 돌아올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구조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힘껏 구조한 개를 지구 반대편으로 보내는 건 동물단체로서도 피하고 싶은 결정입니다. 수 개월에 걸쳐 까다로운 출국 및 검역 절차를을 거쳐야 하는데다 입양이 성사되더라도 잘 지내고 있는지 사후 관리를 하기가 극도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동물단체들이 해외입양을 추진하는 이유는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내 입양길이 끊긴 대형견들을 위한 최후의 선택지로 북미권 해외입양이 추진되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신 해외 입양견들의 근황을 확인하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연간 20~30마리의 구조견을 미국 등지로 입양 보낸다는 동물단체 도그어스플래닛 김효진 대표는 “구조와 입양만큼이나 이후 모니터링이 중요하다는 판단 하에 최근 현지의 입양 가정들을 방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2년 전 농장개 입양을 성사시킨 휴메인월드 이상경 팀장도 “해외로 입양된 구조견들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도록 입양 후 상황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농장개에서 반려견으로 거듭난 해외 입양견들의 생생한 근황은 유튜브 개st하우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성훈 기자, 전병준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