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가 급속한 고령화 흐름에 대응해 ‘에이지테크(Age-Tech)’ 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본격 육성한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바이오 등 첨단 기술을 고령 친화산업과 접목해 산업과 복지의 동반 전환을 꾀하겠다는 구상이다.
부산시는 21일 시청에서 박형준 시장 주재로 제52차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고 ‘제2차 부산시 고령친화산업 육성 종합계획’(2025~2029년)을 확정했다. 회의에는 부산시의회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산업연구원, 김해의생명산업진흥원 등 전문가와 기업·기관 대표들이 참석했다.
부산은 2021년 특·광역시 가운데 처음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지난달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약 80만명(24.7%)에 이르며, 2050년에는 44%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시는 이 같은 구조적 위협을 ‘에이지테크 선도 도시’로 도약할 기회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종합계획에 따라 시는 앞으로 5년간 총 1283억원을 투입해 △인프라 확충 △지원체계 강화 △시민 체감 서비스 확대 △연계사업 발굴 등 4대 전략과 34개 세부과제를 추진한다. 목표는 에이지테크 기업 성장, 청년 일자리 창출, 고령층 삶의 질 향상이다.
우선 인프라 확충 분야에서는 동남권 유일의 첨단 재생의료 임상 실증 플랫폼을 구축하고, 체외 진단 의료기기 원스톱 실증 센터를 설립한다. 2025년 말 준공 예정인 에코델타시티(EDC) 헬스케어·빅데이터 센터를 중심으로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실제 사용자 환경에서 신제품을 시험할 수 있는 5대 앵커 랩도 마련한다.
지원체계 강화는 기업의 에이지테크 전환과 창업 7년 미만 신생기업 육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부산·경남 협력 모델인 K-바이오헬스 지역센터 연계사업을 통해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대학·병원과 공동 연구개발(R&D)을 추진하며 항노화 산업 융합 과제도 발굴한다. 또 RA(규제과학)와 푸드테크 전문인력양성 과정을 운영하고, 국제 규격 대응을 위한 재직자 단기 교육도 마련한다.
시민 체감 서비스도 확대된다. 고령 친화 용품 체험관을 현재 7곳에서 9곳으로 늘리고, 저소득 노인을 대상으로 복지 용구 대여와 사례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올해 디지털 복지관 3곳을 구축하고, 2026년까지 스마트 복지관을 10곳으로 확대한다. 디지털 명상실 설치, 스마트 경로당 50곳 확충, 전국 최초 AI 기반 스마트요양원 보급도 추진된다.
연계사업 발굴에서는 푸드테크 산업 활성화를 모색해 2026년 지역 맞춤형 사업을 발굴하고, ‘내 집에서 나이 들기(Aging in Place)’ 수요에 대응해 주거 개선 과제를 추진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한 집수리 지원도 포함된다.
시는 이번 전략이 단순히 기업 실증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고령층이 실제 생활 속에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었다. 브리핑에 나선 정나영 미래기술전략국장은 “기업 제품이 시장에 나오더라도 실제 고령자가 손쉽게 쓸 수 있어야 한다”며 “복지관·요양원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누구의 도움 없이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5대 앵커 랩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재원 문제도 거론됐다. 올해만 224억원이 필요해 기존 고령 친화 산업 예산(6억원대)에 비해 크게 늘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균형발전 특별회계 재원을 활용하는 구조라 국비 성격으로 조달할 수 있다”며 “올해 디지털 복지관 구축에 9억원이 이미 배정됐고, 내년부터는 스마트 복지관·경로당·요양원 사업으로 확대된다”고 말했다.
디지털 복지관은 출입만 해도 호흡·맥박·혈압을 자동 측정하고 데이터가 기록·관리된다. 교육이나 케어 예약은 앱이나 키오스크로 가능하며, 식사·운동 내역까지 데이터화돼 건강 관리에 활용된다. 스마트 요양원은 돌봄 인력 지원에 중점을 둬 자동 조정 침대·좌석, 원격 모니터링, 센서 기반 알람 등을 도입해 요양보호사의 부담을 덜고 환자 안전 관리도 강화한다.
박 시장은 “부산의 빠른 고령화는 위기이자 기회”라며 “에이지테크를 전략산업으로 키워 고령층 삶의 질을 높이고 청년 일자리와 기업 성장을 이끄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부산=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