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신사참배 거부는 단순 신앙운동 아닌 독립운동”

입력 2025-08-21 16:43 수정 2025-08-21 18:12
고신포럼 등이 주관한 국회학술세미나 참석자들이 21일 서울 여의도 대한민국헌정회 회의실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교회의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단순 종교운동이 아닌 독립운동으로 인정하고, 당시 전국적으로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펼친 한상동(1901~1976) 목사 등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고신포럼(대표 김경헌 목사)과 인천대학교 독립운동사연구소(이태룡 소장)가 주관한 ‘제4회 국회학술세미나’가 21일 서울 여의도 대한민국헌정회 회의실에서 열렸다.

세미나는 일제 치하 당시 한상동 목사를 위주로 펼친 신사참배 거부 운동과 여전히 독립운동가로 서훈되지 못한 신앙 선각자들을 재조명하는 자리였다.

1960년대 부산 한 바닷가에서 열린 삼일교회 교인 수양회에서의 한상동 목사·김차숙 사모. 아래 사진은 김차숙이 옥바라지했던 평양형무소 출옥 성도들. 앞줄 왼쪽부터 최덕지 이기선 방계성 김화준 오윤선 서정환, 뒷줄 왼쪽부터 조수옥 주남선 한상동 이인재 고흥봉 손명복. 국민일보DB

한상동은 1939년 5월 윤술용 등 목회자 10여명과 부산 수영해수욕장에서 수양회를 갖고 일제의 신사참배 거부를 결의했다. 주제 강연에 나선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은 “주기철(1897~1944) 목사는 정통 교회관을 유지한 사람이었으나, 한상동은 ‘분리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그릇된 역사해석이다”며 “한상동과 주기철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고 있었다고 하거나 또 서로 다른 교회론을 갖고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는 다른 근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최 총장은 또 “역사적 사건은 동기에 더해 결과로도 평가돼야 한다”며 “일제는 당시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천황제와 국체, 즉 일본 제국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반국가적 행위라고 본만큼 한상동의 신사참배 거부 운동만 한 독립운동은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상동과 신사참배 거부 운동 참여 교회가 가졌던 시각은 한국장로교회가 신앙해 온 전통적인 교회관에 충실했다”며 “신사참배 거부 운동은 적극적인 교회개혁 운동이었으며, 우상숭배를 강요하는 정치 권력에 대항한 신앙 운동이었다”고 덧붙였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과 오일환 전 보훈교육연구원 원장이 각각 주제 강연하는 모습(위에서부터).

오일환 전 보훈교육연구원 원장은 신사참배 거부 운동이 독립운동으로 공식 인정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오 전 원장은 이를 “신앙의 자유와 신앙전통을 지키려는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어서 종교 내부의 신앙 운동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하지만 그는 “신사참배 거부 운동은 신앙의 이름으로 일제의 동화정책과 국체 수용에 끝까지 저항했고, 민족의 자존과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항일투쟁이었다는 점에서 독립운동으로 인정받아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신사참배 반대로 옥고를 치른 최덕지(1901~1956) 목사와 남편인 한상동을 비롯해 수십 명의 옥중 성도들을 뒷바라지하며 신사참배 거부 수감자들의 대모로 불린 김차숙(1902~1977) 사모 등의 항일운동사도 소개됐다. 일례로 김차숙 사모는 한글학자 김두봉의 조카였고, 우리나라 최초의 무장 여성독립운동가 박차정과는 육촌 간이었다.
세미나 모습.

주최 측은 이 같은 점을 밝히며 한국교회 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시급하다고 했다. 주최 측은 “일본 국회에서 당당하게 신사참배 거부 운동은 죄악이라며 ‘죽으면 죽으리다’를 외친 안이숙 사모, 신사참배를 결의하던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쫓겨나며 투옥, 추방된 한부선 선교사 등 한국교회에는 아직도 독립운동가로 서훈 받지 못한 숱한 분들이 남아있다”며 “향후 범 한국교회 차원의 신사참배 거부운동자 발굴조사에 나설 계획이다”고 전했다.

글·사진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