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의 동서울변전소 옥내화 및 초고압직류송전(HVDC) 변환소 증설 사업이 경기 하남시의 경관심의 과정에서 제동이 걸린 가운데 한전이 사업 지연의 원인을 지자체와 주민에게 돌리며 법적 대응까지 거론하자 지역사회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부터 하남시는 동서울변전소 옥내화·증설 관련 행정 및 심의 과정에서 주민 의견 수렴 부족, 안전성 검토 미흡 등의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시민들은 기존 시설보다 규모가 더 커지는 동서울변전소 옥내화·증설 계획에 대해 강한 반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단순히 전력 수급만을 이유로 추진하는 것은 행정 절차의 정당성을 무시한 처사”라며 “주민의 삶과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사업인 만큼 충분한 의견 수렴과 대안 제시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변전소 인근 주민들은 전자파·소음·경관 훼손 등을 꾸준히 문제 삼아 왔다. 주민들은 “기존 변전소에서도 발생하는 피해를 감내해 왔지만, 더 큰 규모로 증설되면 더욱 심각한 피해가 우려된다”며 “한전 측은 전자파 피해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고, 직류가 안전하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사업은 경기도 행정심판 등의 우여곡절을 거쳐 현재 경관심의가 진행 중이지만, 이 과정에서 한전은 옥상부분 디자인도입, 외관디자인 주민의견 반영 등이 부족해 하남시가 두 차례나 재검토를 결정하게 됐다.
이에 대해 한 주민은 “법 규정상 주민 의견 수렴 의무가 없다는 한전의 논리는 협소하다. 수천억원의 손실만 강조하며 주민 탓을 할 것이 아니라, 기본 설계 단계부터 지역과의 조화를 충분히 고려했어야 한다”면서 “특히 주거 밀집 지역에 대규모 전력 인프라를 신설·증설하는 문제는 단순한 법적 요건 충족이 아니라 신뢰와 설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전은 2027년 사업 완공을 이유로 시급성을 강조하지만, 하남시와 시민들은 “졸속 추진은 오히려 더 큰 사회적 갈등을 불러올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동서울변전소 옥내화·증설 관련 주민 건강권 침해 등을 우려하며 주민 의견 반영을 촉구하고 있다. 앞서 지난 4월 하남시의회는 ‘동서울변전소 증설사업 주민 의견 반영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고 주민 의견을 존중하고 실효성 있는 조치를 강조했다.
이 같이 지역의 반발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전은 지난 19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하남시가 법적 한계를 넘어선 요구로 사업을 고의로 지연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번에도 경관심의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법적 대응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주민들은 “공기업이 국가 인프라를 빌미로 지역민을 협박하는 꼴”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김상택 감일지구총연합회 회장은 “한전은 주민 80%가 반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과의 협의 없이 국가 인프라라는 명분만 내세워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며 “시민의 뜻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동서울변전소 증설을 막기 위해 민·관·정 5자 협의체를 구성해 적극 대응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한전이 추진 중인 ‘동서울변전소 옥내화 및 증설 사업’은 감일신도시와 연접한 동서울변전소에 기존 교류 345kV(킬로볼트) 옥외시설을 옥내화하고, 초고압직류(HVDC) 전압 500kV 관련 시설을 추가 증설하는 사업으로 사업이 완료될 경우 전력설비 용량이 2GW(기가와트)에서 7GW로 3.5배 증가하게 된다. 전력 공급량은 2.5GW에서 4.5GW로 약 1.8배 증가한다.
하남=박재구 기자 park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