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공공 컨템포러리 발레단인 서울시발레단은 창단 2년 차인 올해 해외 객원 수석 무용수 제도를 도입했다. 국내 관객들에게는 해외 발레단에서 간판으로 활동 중인 한국 무용수들의 컨템포러리 발레 역량을 만끽하게 만드는 한편 이들 무용수에게는 국내 활동 거점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오는 22~27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서울시발레단 창단 1주년을 기념 공연 ‘유회웅×한스 판 마넨’에는 네덜란드 국립 발레단 수석무용수 최영규(35)가 객원 수석으로 합류한다. 이번 공연은 유회웅의 ‘노 모어’(NO MORE)와 한스 판 마넨의 ‘파이브 탱고스’(5 Tango’s)의 더블 빌(double bill, 두 개의 독립된 작품을 하나로 묶어 보여주는 것)로 이뤄져 있다. 서울시발레단은 지난해 한스 판 마넨의 ‘캄머발레’에 이어 ‘파이브 탱고스’도 아시아 초연으로 선보인다. 최영규는 ‘파이브 탱고스’의 무용수 겸 리허설 디렉터(연습 지도자)로 참여한다.
18일 서울 용산구 노들섬 서울시발레단 연습실에서 열린 ‘유회웅x한스 판 마넨’ 리허설 공개 및 기자간담회에서 최영규는 “그동안 국내에선 갈라 공연에 몇 차례 참여했는데, 모두 클래식 발레 레퍼토리였다”면서 “네덜란드국립발레단의 경우 클래식 발레와 컨템포러리 발레의 비율이 반반일 정도다. 이번에 한국에서 한스 판 마넨의 전막 컨템포러리 발레를 공연하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인 최영규는 2007년 비엔나 콩쿠르 주니어 1위, 2009년 유스아메리카 그랑프리 시니어 1위와 보스턴 콩쿠르 시니어 금상을 차지하며 기량을 인정받았다. 2011년 말 네덜란드 국립 발레단에 군무로 입단한 그는 입단 4년6개월 만인 2016년 1월 초고속으로 수석무용수에 올랐다. 네덜란드 국립 발레단은 단원 80여 명이 연간 100회 이상의 정기 공연을 소화하는 유럽의 메이저 발레단이다. 그는 이곳에서 활약을 인정받아 네덜란드에서 무용수에게 주어지는 영예로운 상인 라디우스상(2017년)과 스완상(2022년)을 받기도 했다.
“네덜란드 국립 발레단에서 연간 컨템포러리 발레를 7~8편 정도 소화하고 있어요. 특히 한스 판 마넨의 작품은 1년에 적어도 1편은 출연했던 것 같습니다. 입단 15년차로서 쌓인 컨템포러리 발레의 경험과 노하우를 이번에 보여드리고 싶어요.”
한스 판 마넨은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컨템포러리 발레 안무가다. 1973~1985년 네덜란드 국립 발레단 예술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명확한 구조와 세련된 단순함을 특징으로 하는 그는 150여개의 작품을 선보였다. 최영규가 출연하는 ‘파이브 탱고스’는 1977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서 초연됐다.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작곡가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탱고 누에보’를 가지고 만들었다. 탱고의 열정적인 리듬과 발레의 정제된 움직임을 절묘하게 결합한 수작으로, 세계 유수의 발레단 레퍼토리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최영규는 “한스 판 마넨의 작품은 음악성과 함께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은 안무가 특징이다. 이 음악을 들으면 다른 동작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정말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그렇다고 해서 한스 판 마넨의 안무가 주입식이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춤을 추는 무용수가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여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영규가 네덜란드 국립 발레단에서 한스 반 마넨 스페셜리스트로 꼽힌다는 게 서울시발레단의 설명이다. 그래서 서울시발레단은 이번에 ‘파이브 탱고’ 공연을 위해 한스 반 마넨 측과 라이선스 계약을 하면서 최영규를 무용수 겸 리허설 디렉터로 참여시켰다. 최영규는 이번 협업을 통해 발레 무용수를 넘어 지도자로 성장하는 첫 걸음을 뗀 셈이다. 지난해 서울시발레단에서 한스 반 마넨의 ‘캄머발레’에 출연한 뒤 공식적으로 스테이저(작품 지도자)가 된 김지영에 이어 두 번째다.
최영규는 “나는 이번에 무용수이자 스테이저로 온 펠린느 반 디지켄을 돕는 역할이다. 네덜란드 국립 발레단에서 이 작품에 출연했을 때 내가 추는 부분에 대해서만 몰두했다면, 이번엔 리허설 디렉터이기도 한 만큼 작품 전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면서 “그러다보니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예전엔 미처 몰랐던 작품의 깊이를 잘 알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