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퇴원하면 막막…장애인과 고령층 돌봄 연계 제대로 안된다

입력 2025-08-19 05:00
국민일보DB

지난달 말 갑작스러운 복통을 느낀 독거노인 A씨(66)는 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뒤 비뇨기과 수술을 받았다. 입원한 기간은 3일에 불과한 탓에 퇴원 당일에서야 퇴원 계획을 위한 병원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A씨는 식후 30분 이내에 먹어야 하는 항생제 등을 처방받았지만, 집에서 홀로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웠다. 자신에게 필요한 요양보호사 돌봄과 식사 지원 등 돌봄 연계를 받기까지 퇴원 이후 열흘이 걸렸다.

장애인 여성 B씨(67)는 응급실과 요양병원을 전전하다 집으로 돌아갔다. 처음 응급실로 이송되고 6개월 만이었다. 방 문턱을 넘는 일도 곤욕이었는데, 3층에 있는 집의 계단은 30개가 넘었다. 거동이 어려웠고, 투병 중인 남편의 도움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한 사회복지사가 1년 넘게 따로 시간을 들이면서 병원과 자택을 오가며 B씨의 장기요양등급 판정, 주거환경 개선 등을 도왔다.

‘의료·요양 통합돌봄’이 내년 3월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고령층과 장애를 가진 퇴원 환자들은 돌봄의 사각지대에 서 있다. 통합돌봄은 노인·장애인 등이 지역사회 안에서 머물면서 필요한 의료·복지 등을 받도록 연결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하지만 병원 안의 의료와 지역 사회의 복지는 여전히 단절됐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8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지역 특화서비스 및 퇴원환자 지역사회연계 등 신규서비스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요양병원, 급성기 병원 등으로 나뉜 지역사회 연계 시범사업 4가지를 단계적으로 통합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의료와 복지가 두루 필요한 취약계층에게 병원은 통합 돌봄의 중요 관문이다.


하지만 복지 혜택을 신청한 사람에게만 주는 ‘복지 신청주의’ 장벽은 병원에서도 작동한다. 퇴원환자에게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연계하는 데 필요한 소득 정보, 장애 등급 등은 병원에서 열람이 불가능하다. 현행 제도에선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사회복지사가 환자·보호자 상담을 비롯해 거주지의 복지센터, 재가센터 등에 직접 전화를 돌리면서 복지 자원을 발굴하고 연결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돌봄을 연계하려 해도 시간은 늘 촉박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급성기 환자가 평균 입원하는 일수는 2023년 기준 7.2일이다. 이는 병원이 환자를 선별하고, 이들의 욕구를 파악한 뒤 지역사회 복지 자원을 찾아 연계하기까지 주어진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권역 밖에서 이송된 입원 환자일수록 지역사회의 돌봄 연계에는 더 긴 시간이 걸린다.

한 의료사회복지사는 19일 국민일보에 “입원환 환자를 선별·평가한 뒤 퇴원하기 전에 시·군·구로 연결해야 하는 업무는 시간과의 싸움”이라며 “이 과정에서 놓치는 환자도 적지 않은 데다 연계하더라도 보통 한 달이 넘게 걸린다. 지금 인력과 프로세스가 이어진다면 시간 단축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평가한 환자 정보가 돌봄을 제공하는 기초자치단체(시·군·구)가 필요로 하는 정보와 불일치하는 문제도 남아있다. 지역복지센터의 한 사회복지사는 “병원에서 작성한 의학적인 의뢰서가 전달되면 실무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예 상담을 다시 해서 대상자 요구를 재평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는 “의료와 복지의 칸막이가 수십년째 해결되지 않고 있다. 복지 서비스 연계에 필요한 의료정보와 개인자격정보 등이 있는 사회복지통합전산망이 병원에도 열려야만 한다”며 “병원마다 사회복지사 정원(정규직)을 별도로 두고 업무에 수가를 책정해야만 퇴원환자 통합돌봄의 유인이 생긴다”고 말했다. 민소영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통합 돌봄을 책임지는 시군구가 필요로 하는 환자 평가 정보가 적시에 전달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