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향사랑기부제, 지방혁신의 무대가 되려면

입력 2025-08-18 13:03

일본의 고향납세를 벤치마킹해 2023년 시작한 고향사랑기부제가 어느덧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첫해 650억 원, 둘째 해 890억 원을 모금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약 350억 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75% 증가했다. 이 추세라면 역대 최대 모금액이 예상된다.

이 같은 성장은 단순한 제도 확장의 결과가 아니다. 정부와 국회가 민간 플랫폼 참여를 허용하고, 특별재난지역에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등 제도를 보완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지방정부 스스로 혁신의 무대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첫해에는 ‘깜깜이 기부’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광주 동구가 ‘발달장애 청소년 E.T야구단’ 지원, ‘광주극장 100년 꿈’과 같은 지정기부 방식을 선보이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 실험은 법 개정으로 이어졌고, 지방정부가 주민과 기부자를 직접 연결할 때 제도가 어떻게 진화하는지 잘 보여줬다. 경북 영덕군은 대형 산불 직후 신속 모금을 통해 중앙정부 지침 개정을 이끌어냈고, 광주 동구의 ‘유기견 안락사 제로 프로젝트’는 3억9천만 원을 모아 전국 최초의 유기견 입양센터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고향사랑기부제는 단순한 기부 제도를 넘어 지방정부가 주민과 함께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실험장이 되고 있다. 모금 성과는 주민과 기부자가 지방행정을 평가하는 일종의 ‘공개 오디션’으로 나타난다.

나는 대통령 소속 중앙지방분권위원회 분권국장, 청와대 행정자치비서관, 행정자치부 균형발전지원본부장으로서 수십 년간 자치분권을 고민해 왔다. 늘 재정 권한의 한계, 중앙정부 규제, 정치적 고려에 가로막혔지만, 고향사랑기부제는 그 벽에 균열을 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과 광역자치단체장을 모두 지낸 새로운 대통령은 ‘자치와 분권’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지역을 살리는 실질적 권한 배분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고향사랑기부제를 단순한 기부 제도가 아닌 지역혁신 플랫폼으로 확장시킬 절호의 시기다.

이를 위해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지정기부 권한을 과감히 지방정부에 위임해야 한다. 신속성과 창의성은 현장에서 나온다.

둘째, 모금성과를 행정평가와 연계해야 한다. 주민과 기부자가 선택한 정책에 더 큰 재정 지원이 돌아가야 한다.

셋째, 민관 협력 구조를 제도화해야 한다. 플랫폼·기업·시민단체가 함께하는 모금은 행정의 사각지대를 줄인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지금 ‘제도의 성공’을 넘어 ‘자치분권의 성공’을 입증해야 하는 시험대에 서 있다. 중앙은 문을 열고, 지방은 그 안에서 마음껏 뛰어야 한다. 그것이 지방소멸 시대에 우리가 선택해야 할 새로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