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독립군: 끝나지 않은 전쟁’의 핵심 메시지는 ‘남북통일이 될 때까지 독립전쟁은 끝나지 않는다’였다. 지난 정부 당시 흉상이 옮겨질 뻔한 홍범도 장군의 위상을 원위치시키고 국군의 시작이 독립군·광복군에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는 영화 제작 목적은 소재에 불과해 보였다.
홍범도 흉상 이전을 비판하는 첫 장면부터 시작해 항일운동과 윤석열 탄핵 촛불집회 장면이 교차 편집되며 엔딩 크레딧에 애국가가 흘러나오는 후반부까지 영화는 한국 사회에 암약하는 친일 뉴라이트 세력을 척결하자는 메시지에 방점을 찍고 있다. 친일파에 석유를 부어 화형으로 응징하는 장면은 인공지능(AI)로 만든 영상까지 넣어 2번 구체적으로 묘사됐다. 다큐멘터리 영화지만, 소설 구절 같은 상상의 영역을 영화에 차용해 애국심 고취에 활용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7일 일반 시민 119명을 초청해 이 영화를 관람한 뒤 “영화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과 광복 80주년의 의미를 새기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영화만 놓고 보자면 이 대통령이 국민들에 주고 싶었던 메시지가 국군의 뿌리인 홍범도 장군과 독립군의 역사와 정신을 기억하자는 수준에 머문 것인지, 혹은 친일파 응징이 한반도 통일 전까지 계속돼야 한다는 방향까지 나아간 것인지 불분명해 보였다.
특히 이 대통령은 이번주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앞서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라며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 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관람한 영화의 메시지와 외교 무대에서의 메시지가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여전히 일본 제국주의와 친일 세력에 나라가 위태로운 상태라면, 미래지향적인 협력보다는 친일을 처단하는 게 우선돼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에선 영화 관람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광복절에 맞는 일정을 수행한 정도지, 의미 둘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이 대통령은 실용주의적인 분이고, 꼭 ‘역사 바로세우기’를 위해 정권을 잡은 건 아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여권에는 영화 ‘독립군’의 민족주의적 정서가 광범위하게 퍼진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중앙선대위는 지난 대선 당시 ‘전국역사단체협의회’와 정책협약을 맺었다. 이 단체는 “12·3 내란을 보며 식민사관(뉴라이트) 청산을 절감했다”며 민주당과 뉴라이트 세력을 뿌리뽑기를 약속했다고 주장한다. 이 단체는 민주당 의원들과 ‘뉴라이트 매국행위 조사위원회’도 결성했다. 국민의 지지를 받아 제 2의 ‘반민특위’가 되자는 게 결성 목적이다. 결성식엔 민주당 의원 5명이 참석했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두고 일본이 또 다시 한국을 지배하려는 야욕을 현실화할 기회로 보고 있다는 음모론적 주장까지 나왔다.
역사학계에선 이 단체를 “듣도 보도 못했다”고 평가한다. 객관적 역사 연구도 정치적 목적에 따라 친일 사관으로 매도하는 유사 역사학자들의 단체라는 것이다.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역사 문제에 대한 민주당의 정책 방향이 역사학계 동의와 학문적 축적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가야 하는데, 해당 단체는 역사학자들이 전혀 참여하지 않고도 역사학계를 대표하는 듯 행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윤석열 정권의 역사 왜곡은 바로잡아야 하지만, 그 반작용에서 이뤄지는 배타적·폭력적 민족주의를 통해 역사가 정치에 이용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찬휘 항일혁명가기념단체연합 상임이사는 “(뉴라이트 역사 왜곡을 바로잡고자) 역사적 사실과 동떨어져서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역사 설명이 이뤄지면 도리어 극우의 공격을 방조하게 된다”며 “보수 정권과 진보 정권은 지지층 결집에 역사를 활용해 서로를 키워주는 방식으로 적대적 공존해왔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목전에 일본을 향한 외교적 메시지 혼선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유권자나 국민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라며 “영화의 전후 맥락이나 완성도, 정무적 고려를 사전에 세심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외교 당국자도 “메시지 발신과 관리가 고난도 작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며 허탈해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