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한여름 밤의 어떤 꿈

입력 2025-08-17 18:30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김건희씨가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인용한 말이다. 남송시대 시인 양만리의 시 ‘납전월계(臘前月季)’에 나오는 구절인데, ‘열흘이나 붉게 핀 꽃은 없다’는 한자성어로 젊음이나 권력은 한때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 뜻을 알고 있었으면 붉게 피어있을 때 조심하고 또 조심했어야 했다. 그러나 꽃이 영원히 붉게 피어있을 줄로만 알았으니, 어쩌겠는가. 이로써 전직 대통령 부부가 모두 구속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장면이 연출되었다. 이 부부는 이 사태를 어쩌면 한여름 밤의 꿈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당나라 현종 때 여옹이라는 도사가 한단의 한 주막에서 쉬고 있었다. 잠시 후 행색이 초라한 젊은이가 자신을 노생이라고 소개하면서 신세를 한탄하기 시작했다. 여옹이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자, 노생이 졸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옹이 보따리 속에서 베개를 꺼내 노생에게 주었고, 노생은 그것을 베고 잠이 들었다. 배게는 양쪽에 구멍이 뚫린 도자기였는데, 노생은 꿈속에서 그 배게의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그 속에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있었다. 노생은 당대 명문인 그 집 딸과 결혼하고 과거에도 급제한 뒤, 승승장구했다. 그렇게 높은 자리에 올랐으나 투기하는 사람이 있어 좌천되기도 했다. 그러나 3년 후 조정에 복귀한 노생은 재상 자리에까지 올라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던 어느 날, 노생은 갑자기 역적으로 몰려 포박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 고향 산동에서 땅이나 갈면서 살았더라면 이런 억울한 누명은 쓰지 않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벼슬길에 나왔는지..., 지금에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마는, 그 옛날 누더기를 걸치고 한단의 거리를 걷던 때가 그립구나!”

노생은 거듭 한탄하다가 칼을 들어 자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들이 말려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노생과 함께 잡힌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그는 환관의 도움으로 간신히 사형을 면하고 유배되었다. 몇 년 후, 그가 누명을 쓴 사실이 밝혀졌다. 황제는 다시 노생 불러들여 높은 벼슬을 주었고, 그는 다섯 아들과 열 손자를 거느리고 행복한 삶을 누리다가 여든 살에 세상을 떠났다. 노생이 깨어보니 꿈이었다. 여옹이 웃으며 말했다.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네.” 노생은 여옹에게 공손히 절하고 한단을 떠났다.

당나라 때 심기제가 쓴 ‘침중기(枕中記)’라는 전기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로, 여기에서 ‘한단지몽(邯鄲之夢)’이라는 한자성어가 나왔다. 인생의 덧없음과 부귀영화의 헛됨을 뜻한다. 전직 대통령 부부는 이 무더운 한여름 밤에 구치소에서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