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5일 광복 80주년에 광복절 계기 첫 공개연설을 하면서도 한국에 대한 언급을 배제했다. 이처럼 북한이 남북 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통일선교에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통일선교 7개 관계기관이 이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순복음교회(이영훈 담임목사)에서 ‘광복 80주년 기념 통일선교 연합 콘퍼런스’를 열고 과거 한국교회가 보여준 연합의 경험을 토대로, 현재 통일선교의 가장 큰 자산인 1만 탈북민 기독교인들과 함께 북한 복음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개회예배 설교자로 나선 정성진 목사(미래목회포럼 전 이사장)는 “광복 80주년이 되었지만 통일의 길은 완전히, 사방이 막혔다”며 “우리 교회만 해도 25년간 NGO를 통해 북한에서 다양한 사역을 했지만 코로나 이후 추방되어 사역이 완전히 차단됐다”며 현 상황의 심각성을 짚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길이 막혔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는 브라질과 같은 제3세계를 통해 북한 선교의 새 길을 열고 계신다”고 강조했다.
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인 김병로 서울대 교수는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하고 한류 문화를 차단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등 남북 관계가 질적으로 변화했다”며 “두 국가가 실재하는 상황에서 통일을 포기하지 않는 유럽연합(EU)과 같은 모델을 구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북한 국제화’를 목표로 교류 협력과 북한의 변화를 동시에 추동하는 융합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통일선교 기관 연합은 1990년대 북한의 대기근 당시 성공적으로 연합을 이끌어냈던 과거의 경험에서 통일선교 해법의 실마리를 찾았다. 선교통일한국협의회 공동대표인 조기연 목사는 ‘사랑의쌀나누기운동’과 ‘북한교회재건운동’을 통해 한국교회가 북한 복음화의 가능성과 연합의 동력을 확인했던 사례를 제시했다. 그는 당시 경쟁적 선교를 지양하고 연합을 위해 합의했던 ‘북한교회재건 3원칙’을 상기시켰다. 선교 창구를 일원화하고, 단일 기독교단을 설립하고, 독립·자립 교회 지향한다는 원칙이다.
북한 복음화를 위한 미래 전략의 핵심은 통일선교의 가장 큰 열매인 탈북민 1만 성도였다. 북한기독교총연합회 전 회장인 정형신 목사는 “국내 입국 탈북민 3만4000여명 중 1만명 이상이 기독교인이 되었고, 200명이 넘는 목회자와 92개의 탈북민교회가 세워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을 북한 복음화를 위한 ‘전략적 동역자’로 세워야 한다”며 “1만 명의 탈북민 성도들이 북한의 가족, 친척과 소통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은 상상 이상으로 넓다. 탈북민 성도 1명이 곧 북한 기독교인 40명이라고 보고, 이들을 통해 북한 땅에 직접 교회를 개척하는 것을 선교의 분명한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이러한 전략적 제안에 현장의 목소리가 더해졌다. 토론자로 나선 탈북민 출신 김영호 전도사(북한기독교총연합회 신학생분과 담당위원)는 중국에서 복음을 접하고 사역자로 헌신하기까지의 과정을 증언하며 한국교회를 향해 구체적인 동역을 요청했다. 그는 “개척한 탈북민교회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찬양과 다음세대 양육을 이끌어 갈 인력이 부족한 것”이라며 “큰 교회들에서 6개월이나 1년 단위로 교대로 사역자들을 파송해준다면 기초를 세우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부족하고 모자라더라도 우리를 끌어안고 눈물로 기도하며 키워달라”고 덧붙였다.
통일선교에 임하는 한국교회의 근본적인 태도에 대한 성찰도 제기됐다. 선교통일한국협의회 사무총장인 이수봉 목사는 토론자로 나서 북한을 정죄하기에 앞서 죄인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헤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는데, 우리는 죄인을 정죄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 있다”며 “북한이 망하라고 기도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거룩한 하나님이 죄인을 사랑하는 ‘모순을 포용하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라며, 통일 역시 이러한 정신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10년 전 광복 70주년 같은 콘퍼런스에선 4개 기관이 연합했는데 이번 콘퍼런스에선 7개 기관으로 늘어났다. 기독교통일포럼, 미래목회포럼, 북한기독교총연합회, 북한사역목회자협의회, 선교통일한국협의회,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 한국교회통일선교교단협의회가 공동주최했다. 탈북민과 한국인 신도가 함께 어우러져 노래하는 유엘인교회(정철홍 담임목사) 한반도찬양단이 “이 땅에 지친 모든 영혼 주 예수 사랑 알게 하소서…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가사로 CCM ‘한라에서 백두까지 백두에서 땅끝까지’를 찬양했다.
준비위원장인 박동찬 목사는 “독일 통일도 어느 한순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모임과 기도회가 쌓여 하나님의 때에 열매 맺었다”며 “훗날 통일이 되면 오늘 이 자리가 기도의 열매를 맺게 한 모임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영훈 목사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열린 이번 콘퍼런스가 통일 선교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세우고 복음적 평화 통일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전했다.
글·사진=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