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통에 50원’ 물 길어파는 아이들…도움의 손길 절실

입력 2025-08-14 17:57 수정 2025-08-14 18:10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서 음웨지로 향하는 길에 촬영한 사진. 도로가 포장돼 있는만큼 형편이 나은 지역이었으나 이곳에서도 아이들은 노란색 물통을 이고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천 개의 언덕이 있는 나라’라는 별명을 가진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서 서쪽으로 약 4시간을 달려 도착하는 키부호수 인근 마을 음웨지까지 가는 길에도 숱한 언덕을 넘었다.

콩고민주공화국과 국경을 맞댄 마을, 아름다운 호수와 초록빛 언덕이 보이는 그림같은 풍경과 달리 가까이 다가간 그 안의 삶은 거칠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옆에 옹기종기 자리잡은 낡은 흙집들은 가파른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람들은 마실 물을 긷기 위해 제각기 노란 플라스틱통을 머리에 이고 오르막길을 걷는다. 그렇게 길어 온 물은 직접 마시기도 하지만, 약 50프랑(48원)에 팔아 돈을 마련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한 가정의 마음…교회를 움직이다
르윙공고 학교(GS Rwingongo)의 교실. 현지 아동들은 책상도 의자도 없는 이 작은 교실의 돌바닥에 모여앉아 수업을 듣는다.

르완다에서도 손꼽히는 저소득 농어촌 지역인 음웨지는 학교 시설과 교사, 교재 모두 부족하다. 운 좋게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책상 없는 교실 속 자갈 바닥에 앉아 수업을 받는다.

대전 송촌장로교회(한택균 목사) 김용문 집사와 박선자 권사 부부는 이런 현실을 가슴 아파하며 변화의 씨앗을 심었다. 부부는 떡집을 운영하며 어렵게 모은 돈 1억원을 음웨지 기항고초등학교 건축을 위해 내놓았다. 김 집사가 2018년 팬데믹 당시 송촌장로교회의 담임목사였던 고 박경배 목사와 함께 르완다를 방문한 게 그 시작이었다. 남편 없이 자녀를 키우는 싱글맘, 맨발로 힘겹게 길어온 물을 헐값에 파는 어린아이, 방 한 칸짜리 교실에 빼곡히 들어앉아 공부하는 아이들 등의 모습이 김 집사의 눈에 담겼다.

김용문 집사가 후원아동 가정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한없이 밝은 표정으로 모여앉아 수업을 듣던 르완다 아이들의 맑고 순수한 눈빛이 잊혀지지 않던 김 집사는 르완다에 학교를 짓기로 하나님과 약속했다. 기항고초등학교에 복합 교실 건물이 완공된 건 2020년 11월. 아이들은 처음으로 책상과 의자가 있는 교실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됐다. 부부의 기부 소식은 교회 공동체에 알려졌고 그 마음은 곧 다른 교인들의 헌신으로도 번졌다.

김 집사의 후원으로 완공된 기항고초등학교의 모습.

송촌장로교회는 르완다 선교에 앞서 마음을 모았다. 바자회를 열어 선교금을 마련해 현지 아동들에게 염소 등 가축을 후원했다. 이와 함께 가방과 필기도구, 간식 등 아이들을 위한 각종 선물을 준비했다. 몇몇 성도들은 ‘선물을 받는 아이가 웃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직접 작은 구슬을 하나하나 실에 꿰어 팔찌도 만들었다.

기항고초등학교 학생들이 방학임에도 학교에 나와 노래와 춤을 추고 있다. 아이들은 후원자인 김용문 집사와 한국에서 온 선교 팀을 축복하는 내용이 담긴 노래를 부르며 일행을 맞이했다.

한택균 목사를 비롯한 교회 선교팀 12명은 이렇게 준비한 선물을 한아름 안고 최근 르완다를 방문했다. 처음 도착한 기항고초등학교에선 방학 중에도 먼 거리를 걸어 학교에 나온 200여명의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일행을 반겼다. 옥구슬 굴러가듯 맑은 목소리로 축복의 노래를 부르며 춤도 선보였다. 선교팀이 가져온 풍선과 필기구, 팔찌 등 선물을 받은 아이들은 보물을 받은 것마냥 손에 꼭 쥐고 잃어버리지 않으려 품 안에 넣었다.

기항고초등학교 관계자들이 선교팀을 환영하는 춤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 기항고초등학교에는 1000여명의 아이들이 다닌다. 이날 현장에 함께한 김 집사의 딸 김다윤(39)씨는 “직접 와보니 아버지가 하나님께 학교를 세우겠다고 약속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며 “너무나도 반갑게 우리를 마중하고 행복해하는 맑고 순수한 눈빛이 기억에 아른거린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기항고초등학교 학생들이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려보이고 있다.

가난과 맞서 싸우는 아이들
세드릭이 자신의 후원자인 한택균 대전 송촌장로교회 목사의 손을 붙들고 있는 모습.

후원의 손길에도 르완다 아동들의 삶은 여전히 가난과 맞닿아 있다. 한 목사가 후원하는 아이인 세드릭(4)은 약 9평(30㎡) 남짓한 흙집에서 부모님과 두 동생 등 5명의 가족과 함께 산다. 창문이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대낮에도 집 안은 깊은 우물 속처럼 어둡다. 지붕은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다. 비가 내리면 방 한가운데 양동이를 놓는 것 외 대안이 없다. 우기에 비가 많이 오면 흙바닥은 고스란히 물이 스며들어 진흙탕이 된다. 부엌이라고 해봐야 돌 위에 얹은 냄비 하나가 전부다.

세드릭이 옥수수 죽이 다 조리되길 기다리며 물을 마시고 있다.

세드릭 가족의 월평균 수입은 5000프랑(약 4800원). 세드릭의 어머니는 매일 갓난아기를 업고 일거리를 찾아 농장으로 나서지만, 일을 구하지 못해 하루 벌이가 전혀 없는 날도 많다. 가족이 하루 한 끼 먹을 수 있는 식사는 건더기 하나 없이 옥수수 가루로 끓인 묽은 죽 한 그릇이 전부다.

세드릭의 어머니가 옥수수 가루를 선물받곤 그 자리에서 가족들을 먹일 죽을 끓이고 있다.

현지 월드비전 관계자는 “그래도 유치원에 다니는 세드릭은 형편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월드비전 결연이 이뤄지지 않은 가정에서는 어린 나이부터 돈을 버느라 기초적인 교육조차 받지 못하는 아동이 많고, 영양실조로 복수가 차 배가 불룩하게 부푼 아이들도 흔하다. 이날도 마을 외곽에는 이런 아동들이 삼삼오오 모여 부러운 듯한 눈빛으로 세드릭을 바라봤다.

“과거 우리나라도 많은 아픔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외국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교육 의료 주거시설 등 빠르게 발전하며 지금의 복음과 문화를 누리는 국가가 됐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한 가정, 한 명의 아이를 품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후원할 때입니다. 우리가 동참해나갈 때 이 나라도 언젠가는 다른 나라를 후원하고 섬길 수 있는 나라로 성장할 것입니다.”(한택균 목사)

한택균 목사와 세드릭이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월드비전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에 나의 마음도 아프게 하소서’라고 기도한 선교사 밥 피어스 목사가 1950년 설립했다. 월드비전에 기부한 후원금은 아동과 마을의 자립을 위해 쓰이며 모든 사업은 마을 전체의 자립을 위해 15년간 지속된다. 2024년 말 기준 월드비전의 도움으로 전 세계 41개 마을이 자립했다.

한택균 목사와 세드릭이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음웨지(르완다)=글·사진 조승현 기자 cho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