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주에서 음주 상태로 최고급 롤스로이스 승용차를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낸 20대 중국 여성이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뜨거운 이슈로 부상했다. 중국 최고권력층이나 재벌이 숨겨놓은 딸과 해외로 빼돌린 재산이라는 루머가 나돌면서 박탈감과 분노를 표하는 누리꾼들이 많다.
호주 9뉴스와 영국 데일리메일, 중국 언론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양란란(23)이라는 중국계 여성이 지난달 26일 새벽 호주 시드니에서 롤스로이스 승용차를 운전하다 벤츠 승용차를 정면에서 충돌했다. 이 사고로 벤츠 승용차 운전자는 다리를 절단할 수도 있는 중상을 입었다. 양란란은 잠시 벤츠 승용차 운전자의 상태를 살펴본 뒤 현장을 떠났다가 자수하기 위해 돌아왔다. 경찰의 음주측정에서 양성이 나와 구금됐지만, 이날 오후 보석으로 풀려났다.
양란란이 운전하던 롤스로이스는 티파니 블루 색상의 맞춤 제작된 모델로 판매가가 100만 달러(약 1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차 외에 80만 달러 상당의 롤스로이스 컨버터블도 소유하고 있는데 두 승용차 모두 파나마의 페이퍼컴퍼니 소유라는 보도가 나왔다.
양란란은 시드니 동부의 수백만 달러짜리 고급 펜트하우스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 주택은 신탁펀드 소유였다. 그녀가 경찰서에 출석할 때 입은 자켓이 14만 위안(2700만원) 상당의 명품 샤넬 제품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양란란이 보석금으로 3억2000만 위안(약 614억원)을 냈다거나 은행 계좌에 2700억 위안(51조8000억원)이 들어있다는 미확인 루머가 더해지면서 양란란의 정체를 둘러싼 억측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영국 데일리메일이 양란란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취재에 들어갔지만, 소셜미디어나 인터넷에서 활동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갖고 있는 링크드인 계정도 없었다. 특정한 회사나 기관에서 일한 흔적도 없었고 주위를 수소문했지만 한 명의 친구도 확인할 수 없었다. 양란란은 ‘유령 같은 존재’였다.
중국에선 양란란이 대동한 경호원이 중국 최고지도부가 거주하는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근무한 무장경찰 출신이라는 주장과 함께 출신지역과 이름까지 거론됐다. 이는 양란란이 중국 최고권력층 집안일 수 있다는 추측으로 이어졌다.
중국에서 양씨 성을 가진 권력층이 줄줄이 거론됐다. 중국의 8대 혁명원로 중 한 명인 양상쿤 전 중국 국가주석의 증손녀라거나 양제츠 전 중국 외교부장의 손녀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친동생 시위안핑이 전처와 사이에 낳은 딸인데 전처의 성을 따랐다는 루머까지 등장했지만, 근거는 없었다.
‘양란란은 대체 누구인가’ ‘양란란의 아버지는’ ‘양란란의 할아버지는 공산당 중앙위원’ ‘양씨 성을 가진 고위지도자 명단’ 등의 검색어가 중국의 포털과 소셜미디어 검색어 상위에 올랐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 편집장 출신인 관변논객 후시진도 참전했다. 그는 지난 9일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양란란을 둘러싼 소문 중 보석금과 계좌 잔고 등은 사실이 아니라며 논란을 가라앉히려 했지만, 파문은 더 커졌다. 후시진이 나서야 할 정도로 유력한 집안의 딸인 게 분명하다는 심증을 갖게 했기 때문이다.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자 중화망과 펑파이신문, 상관신문 등 중국의 유력 언론도 양란란 논란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펑파이신문은 “호주에서 교통사고를 낸 양란란은 이미 ‘루머바구니’가 됐다. 미확인 정보와 추측이 중국 소셜미디어에 봇물을 이루고 있다”고 짚었다.
양란란은 15일 시드니의 한 법원에 출석한다. 재판 과정에서 실체가 드러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빈부격차가 심하고 부의 부정한 축적이 용인돼온 중국의 현실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중국의 IT전문지 자커(ZAKER)는 12일 “양란란을 둘러싼 소문은 중국인의 아픈 점을 정확히 타격했다”면서 “‘국내에선 한 달에 수천 위안을 받고 3600위안의 육아 보조금에 기뻐하는데 2000년대생 소녀는 어떻게 호주에서 이렇게 많은 돈을 갖게 됐나’ ‘탐관오리의 자녀인가’ ‘우리 돈을 훔쳐서 호화롭게 사는 거 아닌가’ 등이 그렇다”고 전했다.
이어 “양란란 파문이 이렇게 커진 것은 분배 문제에 대한 사회 전체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면서 개혁개방 이후 확대된 빈부격차와 먼저 부자가 된 ‘선부자’ 집단에 대한 사회의 불만이 높은 수준까지 축적됐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송세영 특파원 sysohng@kmib.co.kr